상담을 하기 전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리하는 편이다. 일주일 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담담한 어조로 상담사에게 전달한다. 대부분 듣는 입장인 상담사는 중간중간 재진술이나 그때 나의 감정이 어떠했는지 등 나를 객관화하는 질문을 한다. 근황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오늘은 평소 나의 '잠의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다. 약을 의존하지 않으면 1시간 단위로 깨는 '나', 약을 먹으면 2~3시간 정도 푹 자고 나머지 시간은 각성이 돼서 책을 읽거나 이렇게 글을 쓴다고 이야기했다. 상담사나 정신과 의사나 내게 ' 잠'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충분하게 잠을 자지 못하는 나를 걱정했다.
우연히 이틀 정도 남편이 소파에서 잠을 잤다. 그 덕분인지 모르겠으나 내 수면의 질이 높았다. 중간에 깨는 현상이 있어도 각성하지 않고 다시 잠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전달했더니 수면 분리가 좋은 방법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남편은 부부는 한침대에서 자야 한다고 주장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 고민이거니와 또한 남는 방이 없어서 계속 누구 하나가 소파에서 자는 것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꿔 지금은 나는 침대에서, 남편은 바닥에서 자고 있는데 어제 코 고는 남편 소리에 깨 각성해 소파로 나와서 잤다. 오늘은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해 봐야겠다.
나는 상담사에게 말했다.
"요즘 괜찮아요. 학부모 민원전화도 줄었고, 이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 처음과 지금을 1~10 숫자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어요?"
"처음은 9나 10으로 한다면, 지금은 3 정도인 것 같아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하지만 외부 자극이 들어온다면 아마 7 이상이 되겠죠."
"그렇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실 것 같나요?"
" 예전과 달리 길게 말하진 않을 것 같아요. 학교로 오시라고 하거나, 제가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을 벌 것 같아요."
그렇다. 나는 내가 많이 회복됐음을 안다. 다만 잠이 부족하고, 에너지가 고갈되어 집으로 간다는 사실이 염려될 뿐이었다. 그래서 상담 선생님과는 한 달 후에 뵙기로 하고, 다음날 병원을 갔다.
평소와 달리 내 목소리 톤이 높았는지 의사 선생님께서 학교에서도 이 톤이냐고 물어보셨다.
"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꼴로 편도가 부어서 병원에 다녀요."
"마이크 사용하세요. 선생님 학교에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시는 것 같네요."
"안 그래도 남편이 에너지가 100이라면 너는 90 이상을 학교에서 쓰고 온다며 예전에 많이 다퉜어요. 적어도 30, 40 정도 되는 에너지를 집에 가지고 오라고..... 이번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마이크를 사용하고 있어요. 나름 조절하려고 하는데 막상 수업 시간에 잘 안되긴 해요. 그리고 아이들과 있다 보면 다양한 일이 발생하니깐 신경도 많이 쓰고요."
"요즘 많이 괜찮아요. 글 쓰는 거나 그림 그리고 사진 찍는 일에 몰두하니 잡생각이 적어요. 다만 우리 집 아이들이 아쉬워하고 에너지가 적으니, 친절하지 않아요. 어제도 화를 내면서 이야기했어요."
"그럴 때면 아이들에게 엄마가 힘이 없다고 엄마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세요."
" 다행히 아이들에게 아침에 미안했다고 말하면, 엄마가 힘이 없었잖아요. 괜찮다고 말해줘요."
"아침에 아이들을 꼭 안아주세요. 에너지가 있을 때 나눠 주세요."
나의 MBTI는 'ISTP'이다. 일반적으로 MBTI가 다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I와 P는 맞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밖에 있는 시간보다 집에서 혼자서 무언가에 몰입하거나 멍하니 있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무척 즉흥적이라 계획 세우는 것도 어렵다. 따라서 조직 사회에서 틀에 짜인 대로 움직이는 것을 굉장히 불만을 느끼며 힘들어한다. 수업도 중간에 아이디어가 핑퐁처럼 튀어나오면 아이들과 즉흥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학교에서는 내 수업에 자율권도 없어, 각기 다른 선생이면서도 반 아이들은 획일적인 수업을 듣고 있고, 그걸 진행해야 해서 나는 힘들다. 또한 에너지를 90 이상 외향적인 것처럼 하며 지내고 있으니, 집에 오면 에너지가 남아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어찌하겠는가. 피할 수 없는 상황, 내가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집에 오면 최대한 움츠려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애를 쓴다. 그래야만 살 수 있다. 그래서 나의 아이들에게 요즘 미안하기도 하며, 나를 이해해 주는 가족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