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낙안읍성, 벌교, 보성 차밭을 거쳐 목포에 와서 펭귄 가족은 이른 저녁을 먹고 케이블카를 타고 고하도를 다녀왔다. 그리고 아이들은 집에서 볼 수 없는 텔레비전을 여유롭게 보고, 남편과 나는 숙소 옆에 있는 '백년술집'을 갔다. '백년한옥'은 동생이 '백년술집'은 언니가 운영하는데, 상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호출하면 주인장이 나오신다. 안주도 없고 정말 술만 있다. 그런데 바가 처음인 나는 그 분위기가 좋았다.
여기서 분위기란 음악이 흐르고, 술이 있고, 칵테일을 제조해 주는 이가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여행지에서 남편과 데이트하듯 마주 앉아 남편은 이런 곳도 안 와 봤냐며 놀리며 내 취향을 생각해 칵테일을 골라주는그 분위기를 말한다.
아이 펭귄들을 품에 품고 지낼 때는 꿈에도 못 꾸던 일이다. 이제 그 아이 펭귄들이 우리 품보다 친구 펭귄을 찾고, 서로 비밀을 만들며 우리 품을 조금씩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도 여유가 생기며 우리 사이의 이야기가 많아지고, 아이 펭귄들 사진에서 우리 사진으로 앨범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살면서 이런 곳을 올 줄도 모르고, 내겐 여유도 경제적 독립도 없을 줄 알았다. 스페인의 어느 음식점에 앉아 맥주 한잔하며 남편에게 말했다.
"오래 살기 잘했다. 이런 곳에서 이런 여유를 즐길 줄 누가 알았겠어."
나는 어린 시절 우리 집이 엄청 가난한 줄 알았다. 매일 시래깃국을 먹으며, 부모님이 키우신 옥상의 여린 배추에 된장찌개와 함께 밥 비벼 먹고 생활하며 줄곧 음식점에서 밥을 사 먹는 건 특별한 사람들의 일인 줄 알았다. 엄마는 공장에서 3교대 하면서도 모든 집안일과 음식을 다하셨고, 아빠는 야근이 잦았다. 그래서 우리 집은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반전은 두 분이 돈을 모을 줄만 알았지, 어떻게 쓸 줄은 몰랐다.
그래서 지금은 엄마가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 돈은 있다가도 없고, 있다가도 없다고 말하신다. 여전히 자신에게는 돈 쓸 줄 모르시면서 말이다.
아무튼 나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기로 했다. 돈 돈 거리긴 하지만 그 돈으로 이렇게 여유를 사기도 하고, 펭귄 가족 여행 기록도 남긴다. 그리고 남편 펭귄과 헛소리하며 서로 마주 보며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