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이올린의 예민함이 좋다.
그렇게 나는 나의 예민함을 좋아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성깔 있는 가시나'로 부모에게 친가 쪽 친척 어른들에게 낙인찍혔다. 순종, 온순, 온유와는 거리가 먼, 자기 생각이 분명하며 할 말은 해야 하며 그래서 내 말 때문에 어른들은 불편해했다.
"가시나가 생긴 건 지 아빠 닮아서 예쁜데 성질은 지 엄마 닮아서 못 땠다."
"성격은 아빠가 더 못 땠는데 왜 엄마 닮았다고 해요. 성격이 아빠죠."
실제로도 그렇다.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 외모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다. 부정할 수가 없다. 저 말의 뜻엔 친가 식구들이 엄마를 깎아내린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기에 어린 나이임에도 눈물 맺히지 않으려 노력하며, 바락바락 대들었던 기억이 있다. 친가 쪽 식구들은 참 한결같게도 긍정적인 말을 나에게나 동생에게 해준 적이 없다. 이를테면 동생이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합격했을 때, 축하한다는 말이 아닌,
"그 학교 갈 바에 부산에 전문대를 간다."
는 막말을 하거나, 내가 석사과정에 있을 때 무슨 가시나를 공부만 시키냐며 엄마에게 뭐라고 하거나, 사촌오빠가 네 부모는 고생해서 돈 버는데 너희가 다 까먹는다는 식의 막말을 했다. 그 말들이 켜켜이 쌓여, 나는 스트레스받는 날이면 꿈에 친가 쪽 사람들이 등장하곤 한다. 그래서 나는 '예민하다'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의 부정적 자아를 상기시키는 것 같아서, 그 단어가 나를 잡아 삼킬 것만 같아서 나는 두려웠다. 그 단어가 나오면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그 단어 자체가 되었다. 그런데 그 '예민하다'는 단어가 다르게 들리기 시작한 계기가 있으니, 바이올린 연주를 직관하면서다. 바이올린을 잘 알지 못하고, 연주를 찾아 들은 적도 없을 때이다. 소리에 예민한 내가 그 바이올린 소리에 매료되어 느끼고 있었다. 그 바이올린의 예민함과 나의 예민함이 만나 내 감성을 자극했다. 그래서 나는 좋았다. 그리고 나의 예민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 예민함 덕분에 나는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즐길 줄 알게 되었다. 그 예민함은 나의 아이들에게 대물림되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청각에 예민한 편이다. 특히 아들은 한글을 모르는 일곱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그 아이가 한글을 읽고, 혼자 학원과 집을 왔다갔다 걸어 다닐 수 있는 초등학교 1학년 2학기부터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 예민함을 피아노로 표현하고 지금까지도 자기가 원해서 잘 다니고 있다. 딸은 남동생이 피아노를 칠 때면, 자기가 연주하고 싶은 곡은 가르쳐 달라고 해서 곧잘 치곤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같은 교무실 음악 선생님께 했더니 딸의 이것저것 물어보곤 바이올린을 배우면 좋겠다고 조언해 주셨다. 예민한 아이가 바이올린과 잘 어울린다며, 바이올린이 예민한 악기라고 말해주셨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며, 나는 바이올린의 예민함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린 시절 나의 예민함을 알아봐 주고 그게 나쁜 게 아니라고 해주고 싶다. 너의 예민함이 너를 빛나게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그 말을 나의 아이들에게 말한다. 너는 예민해서 소리를 잘 듣는구나, 그래서 그걸 잘 풍부하게 표현할 줄 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엄마도 예민하다고 그 예민함은 엄마에게서 받은 거라고, 그걸 잘 조절한다면 너에게 참 좋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 역시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선생님은 예민한 사람이야. 그래서 너희가 하는 말들, 행동 등을 그냥 지나치지 않아. 나의 예민함이 너희를 기억하지."
그리고 그 예민함이 발휘될 때마다 학교 아이들은 깜짝 놀라며, 자기에게 관심으로 가지고 있고, 자기 맘을 헤아려주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질문을 쏟아낸다. 그러면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내가 말했잖아, 선생님은 예민해서 작은 것 하나도 잘 놓치지 않아."
그렇게 나는 나의 예민함을 좋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