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나는 미친 듯이 매일 글을 썼다. 그때 내 삶이 고난이라고 생각하고 어떻게든지 탈출구를 찾고 싶었나 보다. 그게 글이었다. 그리고 삶의 어려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고, 쉼이 주어지자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글을 쓰는 일이 멈춰졌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동일한 마음으로, 나는 행위를 하거나 대상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음 성장, 마음 근육 키우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다 보니 내가 나아가는 길이 그 제목을 닮아가고 있냐고 생각하게 됐고, 내가 '성장'과 '키우다'는 단어와 거리가 멀고 환경의 영향에 따라서 여전히 들쑥날쑥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상담과 병원 진료를 통해서 나는 나를 잘 통제하며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고 산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단단해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사실 나는 그대로다. 오히려 나는 변하지 않음에 집중해 좌절하고 넘어졌다. 오늘은그런 날이다. 그러나 나는 절망 속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근무 중에 딸의 전화를 받았다. 학교에서 속상한 일이 있다며, 친구들에게 욕먹은 일을 이야기했다. 딸이 아닌 타인이 똑같은 상황에서 나에게 말한다면 나는 기꺼이 공감하고 위로의 말을 건넸을 것이다. 그런데 딸의 문제는 달랐다. 아이에게 가시 돋친 말로 상황을 정리하며, 그에 따른 딸의 대처가 올바른지, 아닌지 판단하며 평가했다. 그리고 아이는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전화를 서둘러 마무리 짓고, '화'라는 감정이 치밀어 올라 어쩔 줄 몰랐다. 아이에게는 상황을 객관적, 논리적으로 바라보라고 이야기했는데, 실상 나는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퇴근 후 이대로 집에 가면 나는 반복해서 아이를 한 구석으로 몰아세울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업무를 끝내고 아이에게 전화해서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 아이를 만나 꽃집으로 갔다.
"누구야, 원하는 화분을 하나 골라 봐. 엄마가 사 줄게."
딸은 어리둥절하며 찬찬히 둘러보곤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 꽃집 사장님께 계산해 달라고 말하며 말을 이었다.
"제 딸아이예요. 오늘 친구한테 욕먹어서 속상하데요. 그래서 화분 하나 선물로 주려고요."
그다음부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꽃집 사장님은 내가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한, 공감을 해 주셨다. 괜찮다며, 욕한 친구들이 잘못된 거라며, 딸의 마음을 위로해 주며, 맛있는 음료 먹고 기분 풀라며, 옆 카페에 가셔서 음료수 한 잔을 사주셨다. 그러면서 사장님도 나에게 자신도 고민 있다며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나는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이세요."라고 조언을 했다. 그리고 딸에게도 "너도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해. 엄마가 속상해서 너에게 평가하듯이 말했는데, 욕먹을 거 각오해서라도 해야 할 말이면 그렇게 해."
딸은 꽃집 사장님이 사준 망고주스를 쭈우욱 빨며, 알겠다며, 욕먹어도 자기 할말을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딸이 말했다.
"그런데 엄마, 남자아이들이 재수 없다고 말할 때는 괜찮았어요. 예상했거든요. 근데, 화장실에서 여자이이들이 제 뒷말할 때는 너무 속상했어요. 그때 엄마가 제일 먼저 떠 올랐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딸이 제일 원한 건 속상한 걸 공감해 주길 바란 마음이고, 상처받은 자신을 안아주길 바란 거였는데 나는 그런 아이에게 비판적으로 말하고, 아이를 다그쳤다.
"그래 엄마한테 얘기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엄마가 다그치듯 얘기한 건 엄마도 네가 친구들한테 욕먹는 게 속상해서 그랬어. 그래도 다행이다. 그 일 덕분에 오늘 너는 화분이 생기고, 달콤한 망고 주스를 마셨네."
나는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지 않았다. 화를 다스리는 것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예측이 가능하다. 그래서 예측이 불가능한 곳으로 아이를 부른 것이다. 그래서 딸도, 나도 절망 속에 있지 않고 서로를 위로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소설과 같은, 마법과 같은 장면이 우리의 기억에 자리 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