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너무 서글프다. 그게 참 나를 아프게 한다.
너나 알아서 잘하라고, 내가 해도 엄마한테 너보다 더 잘한다고, 너는 매형한테나 똑바로 하라는 이야기였다. 너 보면 위태위태하다고, 이혼할까 봐 겁난다고. 갑자기 여기서 왜 우리 가정 이야기가 나오냐고 도가 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동생은 나가버렸다. 그리고 나는 미친 듯이 울기 시작했고 공황 증상이 온 거다. 그 와중에도 엄마는 남동생이 원래 그러니 네가 이해하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날 이후로 감정 조절이 힘들었다. 눈물이 아무 데서나 쏟아져 나오고 심해지면 호흡 곤란이 올 정도라 상담 선생님께 급하게 연락해서 상담 날짜를 잡았다.
"남동생이 어떤 맥락에서 선생님의 가정을 이야기했는지 모르지만, 그 상황에서는 그 이야기를 꺼내는 건 남동생이 잘못한 거죠."
"말하세요."
"제가 말해도 듣지 않을 거예요."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는 부분은 남동생의 문제고, 선생님은 선생님의 생각을 전달할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1년 반 동안 우리는 말하지 않았다. 한 공간에 있어도 서로의 배우자에게나 조카들에게만 말할 뿐 서로는 말하지 않았다.
남편의 해석에 의하면 둘 다 어린애가 싸우고 말 안 하는 것처럼 그러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처가 식구들은 서로 사과할 줄을 모른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며 하나의 일화를 들려줬다.
"우리 신혼 때, 식구들이 갈빗집 갈 때, 자기가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문을 닫아버렸잖아, 그래서 자기가 맘 상해서 어머니에게 말했는데, 어머니가 줄행랑치듯이 앞으로 막 걸어가시더라고, 사과하지 않고 그냥 가버리셨어. 그리고 자기도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고. 그때 그게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깐 우리 처가 식구들은 자기도 그렇고, 사과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과하지 않더라고."
그랬다.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사과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과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 시간이 해결해 주고, 얼렁뚱땅 넘겨버리기 일 수였다. 그런데 이번은 다르다. 그 상황에서 남동생이 도가 넘어섰다고 생각했다. 평소 남동생과 나의 사이가 나쁘냐면 그렇지 않다. 남동생이 자기만의 별칭으로 나를 부르며 전화 통화나 카톡도 자주 나누고 무엇보다 내가 행복하게 살기 바라는 동생이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내가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도와주려고 애쓰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날의 말들은 나에게 비수로 꽂아 뽑힐 생각을 하지 않는다. 먼저 내가 해도 엄마한테 더 잘한다는 그 말에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엄마 옆에 살면서 육아의 도움을 받지만, 엄마가 아프거나 힘들 때면, 아빠가 해야 할 일을 아들이 대신하고 있으니, 나는 떨어져 살고 있으니 내가 엄마에게 잘해주는 게 없었다. 그런데 그 사실보다 남동생 입에서 그 말이 나왔다는 사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동생을 이해하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엄마와도 한동안 연락을 하고 지내지 않았다.
"엄마 학교 폭력에서도 피해자에게 가해자 이해하라고 이야기하지 않아, 엄마는 지금 나한테 2차 가해하는 거야."
친정집에 가기 전에 남동생 식구가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있다. 이틀인지, 삼일인지 머물다 갔는데, 그때 나는 좀 많이 예민했다. 사실 나는 우리 집에 시댁 식구들이 오는 것보다 친정 식구들이 오는 게 더 불편했다. 시댁 식구는 내가 해 주는 음식은 다 맛있다고 말하며, 나를 칭찬하기에 바쁘다. 그런데 친정 식구는 간이 됐네, 안 됐네, 이건 이러니 저렇네 평가하기 일쑤고 맛있다고 하지 않는다. 특히 남동생은 내가 만든 음식을 먹지 않고 늘 다 배달해서 먹는다. 그래서 나는 남동생네가 왔을 때 예민했다. 더 조심하게, 맞춰주느라 그쪽으로 에너지를 쓰느라 정작 내 식구들에게 까칠하게 굴고 남편에게 예민하게 굴었다. 그 모습을 본 남동생은 나는 지랄맞은 성격이고 저러다 매형이 이혼하자는 소리가 나올까 봐 조마조마했나 보다. 하지만 그 말이 그 피자 사건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동생에게 사과를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사과받지 못했다. 1년 반 지난 지금 얼렁뚱땅 넘기려고 하고 있다. 그게 너무 서글프다. 그게 참 나를 아프게 한다.
결혼하기 전 4, 5년은 혼자 살았고, 결혼하고 이제 곧 13년 차이다. 그럼 친정식구랑 나랑 안 산지 17, 18년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그런데 우리 친정 식구들은, 남동생은 여전히 나를 어린 시절의 '나'로 나를 바라본다. 그 떨어져 산 세월 동안 그리고 내 가정에서의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내 가족을 위해서 내가 '화'를 버리기 위해서 우리 가족의 화목을 위해서 얼마나 애쓰며 살고, 상담을 받고 병원을 다니고 나아져가고 변해가는지는 모른다. 그게 참 너무 서글프다.
상담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나는 1년 반이 지났는데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게 꿈으로 나온다. 나는 알고 있다. 그 아이가 먼저 나에게 먼저 이 이야기를 꺼내며 사과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래서 엄마는 자신을 봐서라도 그렇게 지내지 말아 달라고 나한테 부탁한다. '그런데 엄마, 내가 아주 아파. 맘이 너무 많이 아파. 우리 가족은 나를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어. 그리고 그 아이의 생각이 나를 그렇게 평가하는 게 너무나 슬퍼.' 나는 속으로 이 말을 삼킨다.
그림책: '별이 빛나는 밤', Jimmy Li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