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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방년 May 27. 2023

내 친구 최순덕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이던 우리나라에서 여자이름을 가진 남자가 한 때 대통령을 한 적이 있었다. 전혀 아름답지 않으면서 이상하기 짝을 찾을 수 없는 일들이 왕왕 일어나고 있던 그 시절 나한테 친구 한 명이 있었다.




소공동

노랑이 빨강으로 바뀌는 신호등에 기사가 속도를 늦추자 뒷 문 양쪽이 동시에 열리면서 양복쟁이 두 명이 들이닥쳤다. 걸렸다. 

택시 안에서 담배를 피며 뿜어내는 연기를 노상에서 보고 그 담배가 양담배인지 국산담배인지 식별할 수 있는 이 만만찮은 능력은 어떤 훈련을 얼마동안 받아야 가능한가, 찰나지만 한가하게도 그게 궁금했다.

수갑만 채우지 않았을 뿐, 도주 우려 범인을 연행하듯 두 남자가 좌우에 바짝 붙어 섰다. 경찰서로 가겠는가, 그 자리에서 벌금을 내겠는가. 

명동에서 낮술이나 하려던 참이어서 시간에 매인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경찰서에 가는 게 시간만 감안하면 딱히 불편할 일도 아니었지만 선량한 시민처럼 나도 '경찰서 출입'은 피하고 싶었다. 

벌금에 해당하는 액수가 수중에 없는 것이 문제였다. 

수중 만이 아니라 실은 나의 어디에도 그런 돈은 없었다. 금액이 지금은 대충으로도 생각나지 않지만 액수를 듣는 순간 가슴이 덜컥했던 기억은 있다. 

집에 전화해 돈 가지고 오게 하겠으니 다방에서 기다리자는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평소에 자주 드나드는 북창동 <가화 다방>으로 갔다. 

커피 한 잔에 <청자> 한 갑 주문한 다음 친구한테 전화했다, 이만저만한 지경에 처해 있으니 돈 좀 가지고 급히 와 달라. 




비가 오는 날은 땅이 젖는 날이고 비가 쏟아지는 날은 가슴이 젖는 날이다. 

“비야, 비야, 나터러 어쩌란 말이냐!”

가슴이 젖는 날은 빈 속에 소주 한 병 털어 넣고 거리를 달린다. 


비에 빠졌다 들어선 나에게 <예맥> 마담은 마른 수건 두 장을 건넨다. 한 장은 얼굴과 손을 닦고 한 장은 의자에 깔고 디스크 자키에 임한다. 클래식을, 클래식만 튼다. 

서울에서 오신 강사분들이 점심 식사 후 커피 한 잔 위하여 <예맥>을 찾는다, 루틴이다. 

음악실에서 나와 '꾸벅', 예의를 지킨다. 

"전 군, 더이상 빠지면 시험 볼 수 없어요." 

예쁘지도 않은 게 예쁘게 굴지도 않으니 '전 양'은 간지러웠나?


성적이 시원찮았다. <영어회화>는 D.

"What time did you get up this morning?" 

마더 슈렌이 학생 하나 하나한테 묻는 질문이다. 묻는 사람이나 응답하는 사람이나 모두 진지하다. 

"Why do you ask?"라고 되묻는 나의 어투는 'What is it to you?'다. 

그것도 그나마 입을 열 때 일이고 대부분 질문에 묵묵부답이다. 'D' 받아 싸다. 


'우수한 학생인데 가정형편이 어렵다'가 나에 대한 학교측의 판단이다. '가난하다'는 자타가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우수하다'는 무슨 근거로 내린 결론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3년을 한 푼도 내지 않고 다니다 4학년이 되던 학기, 장학금이 일괄 취소된다. 

머리가 좋아 봤자지 태도문제가 심각하다고 뒤늦게 합의를 본 모양이다. 


"거지 같은 학교, 치사하게 거저 맛에 다녔는데…" 개운한 건 진심이다.

"대학은 졸업해야지, 나중에 유학을 가더라도…"

등록금을 대신 내고 와서 한 말이다, 친구가. 




뉴저지 모리스타운에서 한국으로 파견될 평화봉사단 단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부활절이 왔다. 부활절 휴가에 자기집에 가자는 단원이 있었다. 

미국 가정에 2박3일 초대받았다, 빈 손으로 가기 싫다, 부모님에게 드릴 선물이 필요하다, 자수정으로 이것 저것 보내라,는 주문에 친구는 토 달지 않고 보냈다. 




신랑 신부 둘 다 평복 차림으로 안마당에서 식을 올렸다. 같은 집에 기거하고 있던 나는 식이  끝날 때까지 이층 방안에서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내가 싫다는 남자하고 하는 결혼은 볼 생각이 없었다.  


보고 싶을 땐 시내로 불러냈다. 

하루는 이야기를 "그 사람도 너처럼 팥밥 좋아한다"로 시작하기에, "나, 이제 팥밥 안 좋아해"로 끝내버렸다.  

어느 날

"…같이 사는 게 힘들다"고 나지막이 뱉어냈다.

"내가 뭐랬냐? 하지 말랬지?" 

언성까지 높여가며 신이 나서(!) 받아쳤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았다. 초여름 밤길을 걷고 있던 중, 누군가가 쏜 얼음화살이 가슴에 명중했나? 전신을 휩쓰는 냉기에 덜덜 떨려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순간이었다. 몸은 곧 멀쩡해졌다. 그런데 기분이 묘했다. 친구의 옛집으로 발길이 옮겨졌다.


친구 동생이 울먹이며 더듬거렸다. 


"언니가 ... 언니가 ... 아파트에서 .... 뛰어 .... 내렸어." 




친구라 부르면서 친구니까 마음 편히, 친구라서 아무렇지도 않게 실컷 우려먹었다.  

그랬거나 저랬거나

최순덕은 나의 친구였다.


최순덕은 쌍꺼풀 없는 올리비아 핫세였다.


최순덕은 남이섬에서 찍은 8mm 영화로 영화제에 입상했고 NYU Film School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최순덕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지만 깔깔 웃는 소리가 아주 예뻤다. 


최순덕은 음식이든 옷이든 새롭고 고급스러운 걸 찾아 즐겼다.   


최순덕은 육교 위 거지한테 몇 푼 주는 나를 나무라면서 장애아동 보호소에 피아노를 기증했다.


최순덕은 겨울 해수욕장과 비틀즈 노래를 좋아했고 거짓말을 참 싫어했다.


최순덕은 (내가 살기 싫다고 할 때마다 자기는) 이쁜 가정 꾸리고 할머니 될 때까지 오래 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


최순덕은 23살에 갔다.


나는 최순덕의 친구였나? 





<친구>


피가 

붉은

한 

사람이


눈만

감으면


머얼리


가차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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