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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숙 Sep 18. 2023

근심 걱정이 사라질까?

머무는 것은 없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면 무엇을 해야 할지도 망막하다. 그럴 때는 사람들이 한 방을 생각하며 망상에 빠지기가 쉬운 것 같다. 직장을 툭하면 그만두던 남편이 어느 날 친구를 만나러 다녀오더니 그 친구를 만나는 횟수가 잦았다. 직장을 알아보려니 생각하며 부담이 될 것 같아 묻지를 않았다. 나는 남편이 주지 못하는 생활비를 위해 몬테소리 어린이 교재를 영업하는 일을 하고 있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어느 날 80만 원을 주길래 "이게 뭐야? 그동안 일을 시작했던 거야?" 물으니 대답이 왠지 시원하지 않다. 느낌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얼굴을 볼 시간이 많지 않으니 캐묻지를 못했다. 그렇게 간간히 몇 번 돈을 주는데 안 되겠다 싶었다.


아이들은 엄마 집에 데려다 놓고 "우리 얘기 좀 해,  요즘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거야?"  남편의 입에서

'경마'라는 단어를 듣고 "그게 뭐야?",  '경륜'이라는 말에 또 "그건 뭔데?"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경마와 경륜을 위해 카드 깡을 하고 돈을 따면 나에게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게 주는 돈을 위해 버린 돈은 액수가 너무도 컸다. 잃은 돈 생각으로 틈만 나면 경마장으로 달려가는 남편을 보며 이혼 이야기를 했고 결국 법원 앞에서는 다시는 하지 않겠다며 이혼을 못하겠다고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반복을 하며 지내온 시간 속에 빚은 산더미처럼 커져만 갔다.

                                                                



             '잇따른 불행'


잘못된 생각은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되고, 결과는 뻔한 것이다. 본인이 감당을 할 수 있으면 다행인데 대부분은 그러지도 못한다. 술까지 마시면서 잃게 된 돈을 생각하며 점점 포악해져 갔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나의 무관심을 한탄하고 남편의 무능과 무책임을 원망하며 날마다 큰 소리가 오가게 되었다. 극도의 스트레스는 나의 눈으로 왔다. 중심성 망막증이라는 병명으로 망막에 구멍이 나면서 그곳으로 물이 들어오게 되면 사물의 형태대신 검은 물방울의 모양이 잡혀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구멍은 점점 커지고 들어오는 물의 양도 많아지다 보니, 실내에서는 어지러움으로 눈을 뜰 수가 없게 되었다.


여러 군데의 병원을 다니면서 진찰을 받았지만 돌아오는 말은 모두 최종 실명이란다. 남편이 만들어 놓은 빚은 뒷전이 되었다. 물이 고이면 썩기 때문에 눈알을 고 인공눈을 넣어야 한다는 말에 나는 날마다 상상을 하게 되었고, 아직 아이들은 어린데  그 성장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되, 아무것도 해줄 수 없게 된다는 것에  날마다 울며 돌아다녔다. 갚아야 할 빚은 산더미 같고 희망이라는 두 글자가 내게는 해당사항이 없게 느껴졌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오로지 죽음만이 답인 듯했다.


어두운 그림자가 내 앞을 막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내가 실명이 된다는 사실은 세상이 끝난 것 같은 기분을 만들었다. 빚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때 건강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을 강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내가 건강하기만 하면 그 빚은 얼마가 걸려도 갚을 수 있으니까 상관없을 것 같았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결과적으로 지금 나는 건강하다. 그 빚도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갚았고, 이젠 순조로움만이 나의 길인 것 같은 느낌이다. 당시 상황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었다. 적어도 내가 찾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런데 길은 다른 사람에 의해 내게 열리게 되었다.


함께 어린이 교재를 영업하던 선배가 "우리 같이 돈 좀 벌어보지 않을래?" 하며 내게 다가왔다. 말 한번 섞지 않았던 분이지만 늘 스마트한 느낌으로 그녀를 보며 배우는  부분이 있었다. 건강식품을 취급하는 회사를 말하게 되었고 나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돈을 벌기 위해 그 회사의 제품교육을 받게 되었다. 정작 그녀는 나를 데려다 놓고 본인은 여전히 교재를 영업하고 있었다.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친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것이  눈의 건강을 찾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다.


내가 건강하기만 하면 빚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건강을 찾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건강을 찾게 된 감사함보다  빚을 빨리 갚고자 하는 마음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꽉 차 있었다.

그런 마음이 정상이 된 기쁨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다시 빚을 크게 꺼내놓고 그것을 보며 한숨짓고 답답함에 마음이 성나 있었다.


 지나고 나서 '왜 그랬을까?' 나를 책망한다. 그렇게 절박한 상황에서 가장 큰 고민거리가 해결되었는데, 세상을 다 가진듯한 기쁨이었는데도 감사한 마음은 뒤로 하고  돈만  있었다. 그때 충분하게 감사함으로 그 기쁨을 만끽했다면 그것으로 느껴지는 행복감으로 난 늘 웃으며 살게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것이고 그 틈으로 나는 좀 더 나은 길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이 계시다면 얼마나 씸했을까 싶다.


빚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생각과 그 빚을 만든 남편을 원망하기에 바빴다. 늘 얼굴이 화가 난 사람처럼 웃음기 없이 말라 있었다. 그때의  나의 어리석음이 나를 오랜 시간 힘들게 했던 것 같다.


                                                            


                                                          

              '또  한 번의 절망'



남편과의 갈등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었다. 천행으로 나의 건강을 찾고도 빚 때문에 남편과의 다툼은 끊이지 않았다. 원망으로만 차 있던 나의 마음에는 미움이 크게 자리 잡고 말았다. 얼굴을 보는 것도 목소리 듣는 것도 싫었기에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와 함께 지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지만 우리는 얼굴을 보는 일을 만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나의 이런 모든 마음을 한 순간에 죄책감으로 바꾸어 놓았다.


왜 어리석게도 지나고 나야 알게 되는 것일까? 내가 잘해주었던 것은 하나도 기억에 없고 못했던 것만 머릿속을 채우니 미안하고  안타깝고 그 가운데 원망도 미움도 다시 또 나타나기를 반복하니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원수 같은 남편이었는데 갑자기 애절하게 사랑했던 연인이 되었다가도, 빚을 온전히 혼자 갚아 나가면서는 죽어서 없는 사람에 대한 원망을 또 얼마나 했는지 나의 마음을 내가 알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이라는 말이 나를 휘감고 있던 때였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난 시간이지만 그 시간이 있어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것임을 알기에 그 역시 소중하게 생각을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은 내가 만든 것이라는 생각에 원망도 미움도 사라져 갔다. 그리고 애써 남편을 떠 올리지 않으려 한다. 덕분에 난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의 뜻을 아주 강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구태여 지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힘들게 살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감추고 싶은 이야기를 과감 없이 하는 이유는 이 또한 나의 인생의 일부이기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부끄럽다거나 창피하거나 그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 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런 삶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나는 그나마 다행이네.'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나의 이야기를 보며 '다행이다. 난 저보다는 좀 나아. 그러니 감사한 일이야.'라고 생각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빚을 갚기 위해 나는 매일 돈이 들어와야 했다. 내가 찾은 일은 용역에 등록을 하고 매일 다르게 주어진 일들을 했다. 남의 집 청소를 해주기도 하고, 함바집에서 녹이 슨 그릇을 하루종일 닦기도 하고, 마사지 샵의 방방을 돌아다니며 청소도 하고, 충청도까지 가서 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깔아놓은 검은 거적을 제거하는 일도 했다. 그날그날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전화번호 하나 받아서 약속 장소에 도착을 해서야 어떤 일인 줄 알게 되었다.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올 때는 세상이 나를 등진 것처럼 그 중압감에 숨을 쉬는 것도 버겁게 느껴졌다.


그렇게 일을 하다가 좀 더 일당이 큰 것을 찾기 위해 꽃배달을 했다. 나의 자가용을 팔고 그 돈으로 꽃집에 오래도록 세워놓은 트럭을 샀다. 간신히 굴러가는 천막이 씌어 트럭을 사서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배달을 했다. 비수기에는 용역일을 겸해서 했다. 그렇게 매일 들어오는 돈을 모아 하나의 빚을 갚고 며칠 모아 다른  빚을 갚는 것을 반복하며 어느 정도 갚아지면서 며칠에 한번 돈이 들어와도 되게 되었다. 새벽으로 녹즙을 배달하고 오후에는 다른 알바를 했다. 백화점 시식 코너 행사를 하며 많은 매출을 일으켜 고정으로 그 코너를 자리 잡게 하면서 알바인 내가 4대 보험을 받는 혜택을 받기도 했다.  


부동산 분양을 하게 되면서 월 2800만 원을 벌기도 하고 점차 나아지는 생활로 접어들었다. 빚도 어느 정도 갚고 숨을 돌리기까지  1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지났다. '이건 꿈이야'를 중얼거리며 보내왔던 시간들이다.

그렇게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던 간들이 시간이 지나며 결국은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젠 놓치지 않을 것이다. 작은 것이라도 감사할 일은 충분히 감사해하며 그 기쁨으로 많이 행복하다 느낄 것이다. 그것이 또 감사하여 더 행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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