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그만둔 남편이 경마와 경륜에 빠지면서 빚이 산더미처럼 커졌고, 잘못된 생각이 잘못된 행동으로 이어지면서 상황은 악화되었다.
나는 남편의 무능과 무책임을 원망했고, 얼굴을 보는 것도 목소리를 듣는 것도 싫었기에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 집에서 지내는 등, 날마다 큰소리가 오가며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스트레스는 나의 눈으로 왔다."
진단명은 중심성 망막증이었다. 망막에 구멍이 나서 시신경이 분리되고 있었고, 의사는 고였던 물이 썩으면 눈알을 빼고 인공눈을 넣어야 하며, 시신경이 죽어가는 속도에 따라 양쪽 눈이 다 실명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진단은 하늘이 무너진 듯한 큰 무게로 다가왔고, 남편의 빚 무게는 작게 느껴질 정도였다. 세상이 완전히 끝났다는 생각에 압도되었고, 점점 크게 드는 생각은 죽음이었다.
하지만 내가 죽으면 어린 두 아이가 너무 불쌍했다. 아이들에게마저 자라기도 전에 절망의 씨앗을 심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원망과 미움으로 가득했던 마음을 한순간에 죄책감으로 바꿔 놓았다. 원수 같던 남편이 애절하게 사랑했던 연인이 되었다가도, 빚을 혼자 갚아나가면서 죽은 사람에 대한 원망이 다시 반복되는 등, 마음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결국, 나는 실명 위기라는 극한 상황에 처하고서야 깨달았다. 원망, 미움, 죄책감 같이 내 마음속에 가득 찬 부정적인 감정들은 제때 '분리수거' 되지 못하고 뒤섞여 나를 병들게 했음을.
그 마음의 쓰레기를 방치하며 거기에 계속 더 쌓기만 했다. 그 무게가 짓누르는 힘이 점점 강하게 느껴졌다.
그 마음의 끝은 계속적인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듯이,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건강식품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먹으며 점차 회복된 눈은 세상을 정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에 대한 감사보다 빚을 만든 남편을 미워하는 것에 온 마음을 쏟았다.
마음을 '분리수거' 하듯, 미움과 원망하는 마음옆에 '감사'한 마음을 두었더라면, 그리고 그 '감사'한 마음의 크기를 더 키워 나의 '쉼터'를 만들었더라면 아마도 다른 상황들로 전개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마음의 쓰레기를 방치한 결과는 계속적인 절망이었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그 상황을 방치했는지 돌이켜 보면 나의 어리석음만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