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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숙 Oct 22. 2023

결핍이 창조를 만든다

성장의 기회

우두커니 앉아서 생각을 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떠 오르는 것이 없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미술 시간에 반공포스터를 그리는 시간이었다. 친구들은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 나는 손을 놓고 생각을 하다가 도무지 떠오르는 것이 없어 주먹을 쥐고 책상을 살짝 내리쳤다. 그러다가 문뜩 내 주먹을 보며 떠 올렸다. 검은 악마 같은 손이 남쪽 지도를 덮으려는 모습이 떠올랐다. 난 그 모습을 그리기 위해서 나의 손을 여러 모양으로 만들어 보았다. 손가락을 펴고 무언가를 잡으려는 형상으로 만들어 그 모습을 지도 위에 그리고 '멸공'이라는 글을 넣었다. 다른 친구보다 늦게 시작을 하였지만 빨리 마무리를 했다. 그런데 그 그림이 뽑혀서 교실뒤에 붙게 되었고, 선생님의 칭찬을 보너스로 받았다. 그러더니 얼마뒤 나의 그림이 운동장에 전시할 때 붙게 되었다. 기분이 묘하게 흥분되었다.


국어 시간에 글짓기를 하는 시간에도  나는 재미도 없고 취미도 없던 글짓기 시간이 싫었고 마땅히 쓸 내용도 없었다. 시간은 지나 가는데 선생님의 눈초리는 따갑고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을 해보지만 역시나 무엇을 써야 할지 막연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친구들과 동네 공주능에서 놀았던 모습이 떠 올랐다. 졸졸 흐르는 물가 양옆으로 줄을 서서 가지로 맞닿아 하늘을 덮은 아카시아가 입구에서부터 반겨준다. 들어가면서 두 팔 벌려 반겨주는 아카시아 나무들은 꽃이 필 때면 그 향기를 아낌없이 선사해 준다. 그리고 꽃을 따기 위해 그 큰 나무 위를 겁 없이 올라가서 사정없이 따도 거부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꽃을 흐르는 물에 대충 씻어서 꿀을 빨아먹는다.


가을이 되면 샐 수 없을 만큼 많았던 은행나무들은 마치 누가 더 많이 크는지 내기라도 하듯이 쭉쭉 뻗은 모습으로 기세가 등등하다. 그런 은행나뭇잎들이 바닥을 노랗게 물들이고 켜켜쌓아놓은 나뭇잎들은 따뜻한 이불이 되어 그 속에서 낮잠을 자고 뒹굴 수 있도록 준비를 해준다.


그곳에서 우리는 침대 삼아 뒹굴며 놀았다. 은행잎을 한 움큼 쥐어 서로에게 던지면 하늘에서 노란 눈이 내리는 것 같았다. 은행잎을 이불 삼아 덮어주고  머리부터 노랗게 뒤집어쓴 모습을 보며 서로 웃던 모습들을 그림으로 그리듯 원고지에 글로 적어 내려갔다. 폭신하게 깔린 나뭇잎 위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마냥 즐겁기만 했던 시간이었다. 바람에 떨어지고 있는 나뭇잎을 잡으면 잡았다고 좋아서 웃고 그 나뭇잎이 친구의 머리 위로 떨어지면 그 모습을 보면서 웃었다. 웃을 일도 많았고 즐거움에 마냥 웃었던 모습들을 글로 적었다. 그 글은 담임선생님의 손에 의해 교내 글짓기대회에서 동상을 받았다.



공주능을 가는 길에는 항상 유혹을 받던 곳이 있었다. 양어장이다. 그 양어장에는 미꾸라지들이 펄떡거리며 들어오라고 유혹을 하지만 주변에는 항상 주인아저씨의 날카로운 눈이 있어서 우리는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하는 마음으로 노려보던 곳이다.


어느 날, 우리는 기회를 얻었다.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5명이 물속으로 뛰어들어가서 첨벙거리며 미꾸라지와 실랑이를 했다. 매서운 눈초리를 느끼는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급하게 물밖로 나왔다. 도망을 가려고 했는데 순간 내 다리에 뭔가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 놀랍게도 빨간 것이 매달려 순식간에 몸을 부풀리고 있었다. 그것은 거머리였다. 생전 처음 보는 모습에 놀라서 겁을 먹었다. 나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저씨가 라이터불로 간단하게 뗴어내 주었지만 우리는 한참 훈계를 받고 두 번 다시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나서야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런 약속이 없었더라도 두 번 다시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거머리빨판이 얼마나 대단한지 절대로 그냥 떼어낼 수 없음을 경험했고, 그런 경험을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옛날 허준은 거머리의 그 강한 빨판을 이용해 환자들의 상처가 곯았을 때 그 고름을 짜 내기 위해 거머리를 이용했다고 들었다. 과연 그럴만하다고 충분히 생각된다. 의료시설이 없었을 때 허준은 강하게 빨아내는 뭔가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거머리 생각을 했고 그것은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놀잇감이 필요했다. 그래서 공주능까지 갔던 것이고 그렇게 놀았던 나의 놀이는 하나의 글감이 되어 주었다. 작은 결핍은 작은 창조물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큰 결핍은 많은 것을 상상하게 만들고 그 상상으로 엄청난 창조물을 만들어낸다.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는 것은 내게 결핍이 느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결핍을 채우기 위해 생각을 하고 결국은 어떠한 결과물을 만들어 비슷하게라도 결핍을 채우게 된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모든 순간들은 그러한 결핍을 채우려는 시간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도 따뜻하고 안전의 결핍으로 만들어진 창조물이듯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러한 결핍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어찌 보면 자신의 결핍을 안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길라잡이 역할이 될 것이다. 자신을 잘 안다는 것 역시 자신의 결핍을 아는 것이 될 것이다. 그 결핍은 "뭐가 되고 싶어, 갖고 싶어, 하고 싶어, 보고 싶어, 가고 싶어"처럼  '~싶어'로 표현되며 우리는 그것을 모두 충족시키고자 노력을 한다.


그렇게 '~싶어'라는 말을 채우기 위한 시간으로 살기에 그것이 나의 삶 나의 인생이 되는 것이다. 만족을 느끼고 싶고, 보람을 얻고 싶고, 사랑을 하고 싶고, 등등... 그래서 예술에 몰두를 하고 봉사를 하고 건축가가 되고, 의사가 되고, 등등...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하나 이루어 나간다는 의미가 되고 결국은 자신의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위대한 사람들은 결핍을 크게 느끼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비행기를 만들어 낸 라이트형제는 날고 싶다는 마음의 결핍을 채우려 했던 것이다. 나는 뛰고 싶고 몸으로 표현하는 것에 목말라 있었다. 그래서 무용을 너무도 하고 싶어 했다. 그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택한 것이 태권도였다. 지금도 난 충족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래서 뒤늦은 공부를 하며 계속 도전을 하고 있다.


결핍으로 성장을 하고 그 결핍으로 세상은 발전하여 왔으며 앞으로도 변화를 만드는 발전이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내게 없는 것에 대한 불만을 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그것을 가질 수 있고,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서 자신의 성장과 발전에 몰입을 하는 것은 세상을 사는 방법이라 여긴다. 그것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그러면 그럴수록 더 크게 변하기를 원하고 더 크게 성장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말로 경제적 수준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 에서 모두가 원하는 것은 금수저일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돈에 대한 걱정 없이 사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은 고작 몇 프로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은수저나 흙수저 그중에서도 흙수저가 더 많을 것이다. 그것을 비관적으로만 생각하게 된다면 참으로 허망할 것 같다.


어찌 보면 많은 결핍으로 태어나 흙수저라고 표현을 하지만 그 말은 역으로 최고의 성장을 할 수 있는 큰 기회를 받은 것은 아닐까도 생각을 해본다. 신이 선물을 줄 때는 고통의 보자기에 싸서 준다는 말을 들었다. 신이 큰 선물을 주고 싶어서 주었더니 그것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지 못해 결국은 죽어버리더란다. 그래서 선물을 받을 만큼의 그릇을 키우기 위해 고통을 먼저 주어 두들겨 그릇을 키워놓고 거기에 선물을 준다고 한다.


그 말은 결핍을 채우는 과정을 비유하는 말처럼 느꼈다. 쉽지 않음을... 그러나 그것을 견디고 이겨내면 자신이 원하던 선물을 받게 된다는 뜻이리라. 그 말에 힘입어 나의 마음에 나의 모습을 그려 넣고 그릇을 키우는데 힘쓰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의 결핍을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그것으로 나도 큰 창조물을 만들어 내리라...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을 성장시키다 보면 어떤 모습으로든 그 모양이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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