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영숙 Oct 08. 2023

마음도 분리수거가 필요하다

작은 습관


중학교 3학년이 되어 공부에 신경을 써야 할 때 나는 태권도를 시작했다. 무용을 배우고 싶었지만 하고 싶다는 말조차 해보지도 못하고 포기를 하게 된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오빠가 그만두게 된 태권도를 내가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3단을 취득하고 끊어졌던 태권도와의 인연을 결혼하고 아이들을 유치원 보내게 되면서 다시 맺게 되었다. 결국 남편의 도박으로 생겼던 빚과 그 스트레스로 실명위기에 있던 내가 실명위기에서 막 벗어나면서 다시 만나 태권도를 하게 된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도와주겠다는 조건부로 야간대학을 다니게 되었고,  첫 등록금을 간신히 해결 후 장학금으로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이후 관련된 자격증들을 틈틈이 하나씩 취득하면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모든 일의 중심이 되었던 태권도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내 마음에 언제나 우선시 되었다.


이른 새벽 트럭을 운전하여 포천으로 향했다. 내 자가용을 팔고 그 돈으로 샀던 천을 씌운 트럭으로 꽃배달을 할 때였다.  태권도 심판으로도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포천에서의 태권도시합을 위해 가던 중이었다. 14킬로 정도 남겨두고 바퀴가 펑크가 났다. 시간이 일러서 카센터가 문을 연 곳이 없었다. 내 차는 너무 오래된 차였고 장시간 운행을 하지 않았던 터라 충분히 점검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어 다른 안전대책도 없이 80킬로 속도를 최대로 해서 달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난감했다. 어쩌면 좋을지 시간을 보며 보험회사에 전화를 해서 문의를 했다. 타이어 교체를 해야 했지만 나는 이동 중에 있었고, 보험사에서 올 때까지 한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시속 2~30킬로의 속도로  천천히 이동을 하여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을 하고 보험사에 점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시합중간 점심시간을 맞춰서 오신 분이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고 한다. 펑크가 난 쪽은 바람이 빠질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반대쪽 타이어가 가는 철사가 삐져나와서 조금만 더 운행했더라면 터졌을 것이라고 반드시 교체를 하라고 일러주고 갔다. 시합이 끝나고 가까운 카센터에 들러 상황을 점검했다. 역시 같은 이야기를 한다. 바람이 빠졌던 곳은 전혀 이상이 없다고 했다. 반대쪽 타이어만을 교체하고 돌아오게 되었다.


다음날 다시 운행을 하기 위해 나갔는데 이번에는 둘 다 바람이 빠져 있었다. 누가 일부러 바람을 빼가라도 한 듯이... 다시 보험사에 전화를 했고 바람을 넣어주고 이상이 없다고 갔다. 나는 운행을 하고 돌아와 주차를 시키고 다음날 다시 나갔을 때 또다시 바람이 빠져있는 것을 보고 도저히 운행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꽃배달일을 그만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왠지 몇 개월 전 돌아가신 엄마가 나의 일을 말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포천에서의 일도 그렇고 모든 것이 너무 위험하다고 걱정하셨던 엄마가 못하게 하려고 강하게 메시지를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결국 그 트럭을 폐차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꽃배달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빚 때문에 차분하게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나를 너무 위험하고 대책 없는 쪽으로 몰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할수로 돌아가라"라고 하는 말이 내 앞에 진을 쳤다.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했어야 했던 난 아직도 갚아야 할 빚이 많았고 날마다 돈이 들어와야 하는 상황인데 또다시 찾는 일 역시 앞으로를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조금 더 전문성을 찾기가 들었다. 그런 시간들이 지날수록 난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일을 찾을 수 없게 되고,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방향이 없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우연히 다른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에서 알게 된 택배사에서의 알바를 찾게 되었다. 입고, 출고, 반품, 소분등 그곳에서 다양하게 일을 했다. 조금은 안전하였으나 역시나 힘들고 피곤한 일이었다. 그러나 용역에서의 일보다는 훨씬 심적으로 편안했다. 적어도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고 일을 했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하면서 규칙적인 시간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리고 나의 시간들에 이름표를 붙여쓰기로 했다. [MY TIME]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그 시간에는 오로지 나만을 위해 쓰기로 했다. 책을 읽던, 내 방을 꾸미던, 글을 쓰던, 산책을 하던 나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정했다. [FUTURE]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그 시간에는 우리의 미래에 대한 모습을 떠 올리며 내가 원하는 삶을 상상하기도 하고 짧게라도 명상을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했다. [LOVE] 시간에는 가족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얘기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HAPPY] 시간에는 일을 하며 받는 돈으로 빚을 갚을 수 있는 시간이기에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빚이 갚아지면 좀 더 홀가분하게 나의 길을 제대로 갈 수 있으려니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름은 그때마다 새롭게 지어졌고 유치하지만 난 이것을 즐겼다.


이렇게 시간에 이름표를 붙였을 뿐인데 특별함이 없었던 시간들이 모두가 특별해졌다. 그리고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듯 마구 뒤섞인 생각들이 분리가 되어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복잡하게 섞여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정리가 되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눈에 보였다. 생각이 정리가 되니 마음의 복잡함도 정리가 되고, 나의 할 일들이 뚜렷하게 보이고, 더 이상은 나의 미래가 두렵지 않았다. 나의 미래를 내가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빚을 다 갚아야만 평온함과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그 순간들을 즐길 수 있었고, 나름 행복함도 느꼈다. 그리고 쫓기듯 살던 생활이 내가 주도하에 움직여진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에 난 조금씩 나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간간이 끊기기도 했던 일이지만 아직 난 이것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난 또 새롭게 계획을 하게 되었고 조금씩 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생활 속에 즐거움이 느껴졌고 즐길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난 웃음을 간직하며 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감사할 일들이 하나씩 늘어나고 있음도 느끼게 되었다. 난 앞으로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즐길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뀌어질 것을 예감한다.







 

이전 01화 근심 걱정이 사라질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