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시전 26화]
문득 최 박사의 말이 떠오른 이 형사는 서둘러 몽환병 환자들의 소지품 속 휴대전화를 들고 최 박사의 사무실로 가져다주었다.
휴대전화를 건네던 이 형사가 생각에 잠긴 듯한 최 박사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박사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을 그리하십니까?]
이 형사의 사과에도 멈춰버린 시선은 여전히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생각의 끈을 놓지 않으며 마치 정해진 답을 이야기하는 AI처럼 무감각한 표정으로 한동안 이야기를 듣고 반문하기를 반복했다.
[형사님은 게임 좋아하십니까?]
[게임이요! 예전에는 조금 했습니다만 요즘은 그럴 시간도 없고 흔한 동물 대가리 맞추는 게임도 안 합니다. 그런데 그런 건 왜? 물어보시나요?]
최 박사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여전히 한 곳을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저들 말입니다. 모두 게임에 관한 이야기만 하고 있어요. 한결같이 모두가 다 말입니다.]
[우연이라고 보기는 힘든 듯한데 도무지 모르겠단 말이지요... 아차! 충전, 충전해야 합니다]
최 박사가 깜짝 놀라며 그가 한동안 유지했던 무감각한 표정과 고정된 시선을 풀고 자리에서 급히 일어났다. 그리곤 서둘러 충전하기 위해 콘센트 쪽으로 달려갔다.
콘센트는 최 박사 책상 쪽에도 있었지만 이미 빈자리가 없었고 반대쪽 입구에 한 곳이 남아 있었다.
최 박사가 철저한 것이 남아있던 곳에 멀티탭을 이용해 한 번에 8대의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해 둔 모양이었다.
서둘러 충전기를 연결하던 최 박사가 문득 화면 속 캐릭터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리고 갑자기 격양된 목소리로 이 형사를 불렀다.
[형사님! 이것 좀 보세요!] 이 형사가 최 박사의 목소리에 놀라 충전 중인 휴대전화 쪽으로 다가가 살펴보았다.
[왜요? 뭔데요?] 최 박사가 답답하다는 듯 이 형사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상한 거 모르겠어요?] [여기 이 사람들 게임 속 화면이 모두 같아요.]
[아! 모두는 아니구나 이 사람은 다르네…….] [아무튼 이 사람하고 이 사람 그리고….] 잠시 뒷말을 길게 가져가던 최 박사가 자신의 책상 쪽에서 충전 중이던 전화기를 가리키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저기 저 사람도 같은 화면이에요] 새로운 공통점을 찾은 기쁨에 최 박사는 목소리에 힘이 실려 흥분하였다. [그렇네요] 둘은 같은 화면을 하는 휴대전화들끼리 모아두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둘은 동시에 무언가를 알아낸 듯한 표정으로 서로 마주 보다가 다시 전화기를 보았다가를 반복하더니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럴 수가] 둘은 자신들이 본 것을 믿기 힘들다는 듯 서로 마주 보며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라며 서로에게 물었다.
전화기 속 캐릭터들의 대화가 채팅 창에 글로 표기되고 있었는데 마치 연극을 보는듯했기 때문이었다.
둘은 전화기 속 캐릭터들이 살아있음을 그들의 대화 속에서 알아낼 수 있었다.
특히 이마리가 흘려놓은 짧은 푸념의 말을 읽었을 때 그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나저나 내 휴대전화는 충전했으려나 배터리 얼마 없을 건데... 그 최태성이라는 의사 양반 믿어도 되려나?] 이런 이야기는 최 박사와 환자만이 알고 있는 내용을 게임 속 캐릭터들이 하고 있으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 형사와 최 박사는 지금까지의 수사 방향을 새로 정비해야 했다.
먼저 이 형사는 실시간으로 휴대전화의 화면을 볼 수 있도록 상황실을 신설하였으며, 공조팀에 함께 있는 다른 국가의 형사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더는 어떻게 몽환 상태가 되는지보다는 이들과 어떻게 하면 소통할 수 있는지 어떤 지원을 하여야 하는지와 같은 구체적인 방법들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모니터링의 파급효과는 아주 빨랐다.
미국이나 독일 쪽에서 새롭게 몽환 상태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에게 준비된 질문들을 할 수 있었고 또한 그들의 대화를 현실에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전달하였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들의 행동을 볼 수 있고 대화를 읽을 수는 있지만 지원할 방법은 없다는 것이 안타깝고 아쉬웠다.
게임 속의 하루는 현실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현실에서의 하루는 24시간이지만 게임 속 하루는 6시간이었다.
현실 세계의 하루가 그들의 4일인 샘이다.
휴대전화 속 일행들이 아지트 지하에 모여 잠을 자는 듯했다.
채팅 창에 아무런 글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분명히 그래 보였다.
그런데 잠시 후 한 캐릭터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는 것이 목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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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