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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by 서기선

가을 벗이 문을 열고 들어와

내 곁에 걸터앉았다.
어떤 말도, 눈길도 없이

나의 시선을 따라

빈 노트를 바라본다.


나는 차를 한 잔 따르고
벗과 나누어 마시다

묵은 한숨 하나 흘려 보냈다
내 숨결이 무겁게 내려앉는 순간에도
벗은 불편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정적이 흘렀다.


어쩌면 이 정적이
내 안의 웅성거림을 잠재우는
유일한 시간이기에.


벗은 떠날 때도 인사하지 않았다.
그저 문틈 사이로 흩어질 뿐.


그리고 나는 비로서 빈 노트에 한 줄 적었다.
“또 와도 괜찮아.”



이 시는 문학 고을을 선집 19호에 실린 저의 시입니다.

가을에 발표했기 때문에 당시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찬 바람이 불기기 시작하네요.

늦기 전에 전 인사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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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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