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선언

제1장 우주의 비밀을 아는 자

by 절대신비


99가 있는데 단지 1이 없는 사람 있다면

그 1 채워주고 싶다.


그럴 때 내 모자란 1도 채워진다.

이는 기부도 연민도 아니다.


다만 수학이다

과학이다.


우주의 법칙이자

비로소 사랑이다.


우주의 격발은 말하자면 100

우리는 원래 100에서 왔다.


너에게 줄 1은 나의 100*이다.

너의 99도 너의 100이다.

그러므로 너의 99나

나의 1이나 큰 차이 없다.


애초 우리의 100은

0과 다름없는 100

너에게 100을 주고 0이 되더라도

나는 빼앗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침내 꽃 한 송이 피는 장면 목도 할 수 있다면

이 우주에 희망이 있다는 증명이 될 뿐


그 꽃은 단지 너의 것이 아니라

애초 ‘완전’에서 온 우리 모두의 것


‘나’는 풍성해질 뿐이다.

너는 부분을 얻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전체를 준 것


너는 부분만을 볼 수도 있지만

나는 생을 통째로 보고 있는 것.


부분에 끌려다니지 않고

전체를 상대하는 법

배역에 따라 연기하는 게 아니라

내 생의 각본 직접 쓰는 것


비로소 돌멩이와 쓰레기 가운데

황금 발견할 수 있다.


너의 우주와 나의 우주

포개질 수 있다.


그럴 때 너와 나 사이에

삶의 꽃 한 송이 피어난다.


꽃은 그냥 피지 않는다.

환경이 척박할 때

마지막 온 힘 다해 핀다.


꽃을 피웠다는 건

제 할 일 마쳤다는 것

죽어도 좋다는 뜻이다.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그러므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온실 속에 꽃 피는 이야기는

가짜다.


온실에는 소실점이 없다.

목표가 없으므로

과정도 없다.


처단해야 할 쓰레기도

배신자도 없으므로

오로지 따뜻한 온도와 습도만 있으므로 가짜.

주인이 따로 있으므로 노예.


적이 없는 자는

지도자도

지사도 아니다.


기승전결 없는 이야기는 이야기가 아니고

서사 없는 영웅은 영웅이 아니다.


시행착오 없는 성공은

성공이 아니다.


대선 후보들이 저마다

낯간지러운 미담 전시하는 이유다.


그러나 말하건대 미담이 아니라

서사여야 한다.


소년성공이 아니라

길 위에서의 지난한 사투여야 한다.


삶의 구경꾼이 아니라

전사여야 한다.


나른한 시인이 아니라

처형당한 시인이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세상의 바보들에게 해주고 싶다.

물론 그들은 죽어도 모를 것이다.


그러니 들을 귀 있는 자만 들어라.

죽어도 죽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으로만 들어라.





여기서 1은 부분이 아니라 나의 100이다. 나의 99 중 1을 주고 98을 남기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리하여 부분 1을 주고 전체 100을 얻겠다는 게 아니다. 나의 100이 너에게로 가면 겨우 1이 되어 너의 99와 보태질 수 있을 뿐. 그리하여 100이 된다면 그것이 바로 기적. 이 우주에 희망이 있다는 증명이 될 뿐.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 :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진리를 깨달았으면 죽어도 여한 없다.) 출처는 공자의 論語(논어) 里仁篇(이인 편).

*여기서 시인은 그 시인이 아니다. 삶의 전사는, 혁명가는 생 자체가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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