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삶의 꽃 한 송이 피우기
생각할 때는 기본적으로 포지션이 있다.
예를 들면 히말라야 정상에 서는 것
혹은 성간 우주에 떠 있는 것 등이다.
사안에 따라 망원경이나 현미경 쓰듯
뒤로 물러나거나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디테일에 매몰되어서는 안 될 때가 있고
또 너무 멀리 떨어져 맨송맨송
나라 없는 사람의 얼굴 해서는
안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우주에 둥둥 떠서
지구와 별들과 적막 바라보는 것
전모를 보는 습관이다.
혼란스럽고 분노가 치미는 상황에서는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이 좋다.
게시판에 전쟁 났을 때는
잠시 스마트폰 던지고 산책이나 운동하며
흥분 가라앉히는 게 좋다.
늦은 밤 독서에 집중력 떨어질 땐
아주 조금 고개 뒤로 빼
문장과 단락 전체를 통으로 훑으면
맥락 한눈에 쑥 들어온다.
반면 가까이 다가가야 할 때라면
세계의 불행 혹은
공적인 일 같은 것이다.
그럴 땐 한 걸음 바짝 다가가야 한다.
줌인해야 한다.
때에 따라 현미경 써야 한다.
나의 일은 남의 일처럼 차분히 보게 되고
그 외의 일엔 내 일처럼 마음 바빠진다.
우주에 둥둥 떠서 혹은
커다랗게 자라 우주 경계에 긴 다리 걸치고서
우리 사회 내려다볼 필요 있다.
제 코앞만 보며 쫓겨 다닐 때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작아진다.
자신이 인식하는 범위가 곧 자기 자신이다.
몸이나 기억이 아니라 바운더리가 ‘나’다.
좁은 땅덩이, 지정학적 한계에 갇힌 우리나라는 공적 분야 즉 정치, 경제, 사회, 범죄 등에도 특유의 과몰입 현상이 있다. 마녀사냥, 조리돌림도 곧잘 이루어지곤 한다. 인간의 본성은 암흑의 중세와 다를 것 없다. 우리는 과연 진보했을까? 본능 극복하고 진화할 수 있을까?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사안과 자신을 동시에 들여다볼 필요 있다. 신의 관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