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신의 농담 04화

신에의 재현

제2장 삶의 꽃 한 송이 피우기

by 절대신비

‘나’라는 것은

단지 몸이 아니라

기억이 아니라


바운더리다.


나, 가족, 지역, 나라, 세계, 우주

어디까지가 ‘나’인가?


혹은 낯선 상황,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나아가는가


그게 ‘나’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 매몰되는가?

손해 보고 누명 쓰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성큼성큼 장대한 걸음 걷는가?


즉 인류 단위, 우주 단위로 사고하는가?

인간 혹은 신에 대한

진화에 대한 강력한 확신 없이는

긴 안목 큰 계획은 불가능한 일

신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주로 신의 존재만을 찬양한다.


21세기 오늘날에도

신비주의자들은 여전히 신을 이야기하며

신과의 만남이라는

사건은 간과한다.


신과 ‘나’의 만남

그 천둥 같은 합일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신을 섬기느라 도리어 저를 소외시킨다.

그러나 말하건대

인간과 유리된 신은 신이 아니다.

이데아는 따로 있지 않다.


인간이 업그레이드되어 신이 되는 게 아니라

신과 인간이 구분되지 않는

그 순간이 신이다.


주최하고 주도하며

절대차원을 사는 순간이 신이다.

존재가 증명되는 순간이 신이다.


날마다 싸워 이기는 우리 몸 안의 항체가

매 순간 바다와 싸우는 노인이

죽음으로부터 깨어난 새벽이

사막에서 길을 잃고 다시 길을 찾은


무덤에서 걸어 나온 그 순간이 바로

신이다.

신에의 재현이다.


말하건대 신을 모시는 일은

플랫랜드*에 사는 납작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

단지 2차원을 숭배하는 것


단 한 구절, 한 문장과의 만남

그 부딪힘조차 신에의 전율


차라리 경도와 위도에 높이를 추가하라.

훌쩍 날아올라 대기권 탈출하라.




신흥종교 교주에게 전 재산 바치지 않아도 된다는 말. 차라리 몸이라는 성전에 운동이라는 제물 바쳐라. 정신이라는 종교에 사유라는 교리 펼쳐라.




*플랫랜드 : 에드윈 A. 애보트의 수학 소설(1884)로서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책 맨 앞에 헌사로 소개되어 있다. “이제껏 2차원 세계만을 알고 살아온 어느 미천한 플랫랜드 출신자가 3차원 세계의 신비를 접했을 때처럼 이 거룩한 세계의 시민들도 4차원, 5차원, 6차원의 비밀에 이르기까지 더 높고 높은 세계를 염원하길. 그리하여 그들 입체 인류의 탁월한 인간종들이 상상력을 꽃피우고 겸손이라는 귀한 재능을 더 깊이깊이 키워나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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