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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우먼의 아침

박래현의 <이른 아침>

by 램즈이어

1950년대 시골의 장터

새벽 공기 가르는

네 분의 커리어 우먼

커다란 광주리

척 머리에 이고

푸드덕 거리는 수탉

한 줌에 장악

놀겠다 때 쓰는 아이

단단히 낚아채고

덜 깬 잠에 고개 젖혀진 아이

적당히 등에 붙여두는

서커스 단원 저리 가라

고도의 평형감각

수박 참외 민물게 달걀 꾸러미

동그란 봇짐 속의 뜨개 바느질감

이래 봬도 직접 수확한

풍성한 밑천이라

우아한 치맛자락이

위풍당당하다

와우! 짐 꾸러미

흐드러 내린

나리 꽃줄기

치열한 터전에서

지켜낸

주홍빛 감성 몇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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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서울의 아파트

알람은 수탉처럼

꼬끼요

빨리 일어나요

아침형 인간 되겠다는 결심

작심삼일도 못돼요?

삐리리

꿈길 저편 사방에서

여러 기척이 들린다

책 읽는 음성

글 짓는 소리

라이킷 전하는 터치

휙휙

하천 길 내 달리는

경쾌한 조깅 발자국

비몽사몽 네 네

존경하는 벗님

따라갈게요


엄마 손 뿌리치는 저 아이처럼

달콤한 나라에서

아직 아직

조금만 더

꿰미에 매달린 민물게처럼

침대 보 사이를 엉금엉금

새벽시간 자기 계발은

내일부터 꼭 시작하리라


앗! 벌써 8시

지각이다

후다닥 뛰쳐나가는


풍요의 시대

어느 커리어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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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트: 박래현 화가 초기의 반추상적 작품을 좋아합니다. 올해 봄 소마 미술관에서 그리운 이 작품을 봤는데, 엊그제 키아프 특별전에서 또 만났습니다. (서울 키아프 전시는 처음엔 포기했다가 마지막 날 간신히 관람 성공.) 1950년대 시골 아낙네들의 소박하지만 건강하고 절박한 삶의 모습이 현대적으로 세련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울컥 솟아납니다.

<이른 아침> 한지에 수간 채색, 263x194cm.1956

** <이른 아침 early morning>은 1956년 제8회 대한미술협회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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