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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동아줄을 붙잡고

진료실의 인생 선배

by 램즈이어

어머니 모임에서 자녀 교육에 대한 정보 교환이 시들해지는 날, 새로이 인기를 얻는 주인공이 있다. 흥미진진 갱년기 괴담이다.* 과장이든 유용한 팁이던 이 시기를 먼저 경험한 친구나 언니의 한마디는 꽤 영향력 있는 것 같다.

주로 일터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내게는 환자들이 앞서가는 인생 선배였다. 겉으로는 필요한 처방전을 내가 끊어주고 있지만 그들이 겪는 괴로움이나 한마디 말에서 적잖은 위로와 지혜를 얻었다.

갱년기 후 수면장애를 겪는 분이 도움을 청한 적이 있다.

“잠들기가 너무나 힘들어요. 여러 방법으로 애써도 먹히지가 않네요.”

“그래도 수면 유도제는 되도록 쓰지 말아야 할 텐데요.”

“알고 있어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꼭 필요할 때만 쓸게요.”

마지못해 처방은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왜 운동 등으로 좀 더 노력을 해보시지 않나 하는 판단을 했다. 내가 갱년기를 맞이할 때까지.

이분은 한동안 약을 타러 왔던 것 같다. 번번이 나는, 참 오래 약을 쓴다고, 이제는 좀 끊어 보자고 하고 환자분은 곤란한 미소로 응대했다. 이년이 지난 어느 때부터인가 그분이 오지 않더니 한참 후 계절 감기 철이 되자 나타났다.

“요새 졸피뎀 타러 안 오시네요?”

그분은 빙그레 웃으며 이제는 약이 필요 없다고 답했다. 사람마다 다양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신기하게 나도 2년가량을 잠과 씨름하며 번번이 수면 유도제를 의지했다. 그 기간이 지나니까 슬며시 약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수면장애에 유익한 다음과 같은 인지 행동치료를 열심히 한 덕분인지, 세월이 치료해 준 것인지 잘 모르겠다. 둘 다일 수도 있다.

* 일정에 관계없이 매일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난다. (특히 해가 뜰 때 일어난다.)

* 낮잠을 없앤다. (한낮에 햇빛을 20분 정도 받으며 산책한다.)

* 잠자기 전 불안을 유발하거나 자극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다.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

* 저녁 식사를 일찍 마친다.

* 침대의 용도를 수면과 섹스로 제한한다. (무거운 이불을 덮는다.)

* 중간에 일어나서 다시 잘 수 없는 경우에: 15분 정도 누워 있다가 다시 잠들지 못하면

불빛이 희미한 방으로 가서 지루한 책을 읽는다. (318p)**


다른 여러 가지 증세들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처음에 민간요법을 시도했다. 두부와 석류를 열심히 먹고 멜라토닌, 식물성 여성 호르몬을 챙겨 먹었다. 그런데 이 종류는 아무리 먹어도 그 효능이 별로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건강식품으로 나온 식물성 여성 호르몬은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가격이 만만찮았다.

결국 처방이 필요한 여성 호르몬제를 복용하기로 했다. 학회 때 완경을 맞이하자마자 쓰는 경우 실(失)보다 득(得)이 훨씬 크다는 강의를 들어왔다. 4-5년 까지는 유방암에 대한 위험도가 보통 사람보다 높아지지 않는다 하고, 가족력이 없어서 결심하기가 쉬었다. 여성 호르몬은 뼈를 보호해 주는 효과도 있으니까. 관절의 퍽퍽함이 덜한 것은 그 에스트로겐 프로제스테론 덕을 본 것 같다.

『완경 선언』의 저자 제니퍼 건터도 나랑 비슷한 결정을 했나 본데 이에 따른 웃픈 에피소드가 있다.

내가 완경기 호르몬 요법(MHT)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자 나를 인터뷰하던 기자가 놀라서 숨이 막히는 표정을 짓던 기억이 생생하다. 마치 런던의 한 펍에서 방금 만나 이름도 모르는 엄청나게 멋진 남자와 대영박물관 지붕에서 섹스를 했다는 고백이라도 들은 표정이었다. 그의 반응은 MHT를 사용하는 여성의 숫자가 많이 줄어든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에스트로겐이 젊어지게 하는 위험한 마법이라도 되는 듯한 잘못된 상식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492p) **


골다공증은 단골의 예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가장 두려워하던 병이다. 고관절 골절로 2개월간 큰 병원에 입원한 60대 환자분이 있다. 거동이 불편해져 육 개월 정도 지난 후 독감 접종을 위해 내원했다.

“지난봄에 고생 많으셨....”

오랜만의 인사를 나누다가 그분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잘못 들어온 줄 알았다. 사망률이 꽤 높은 병이니 무사히 완쾌한 것만도 감사하지만 10년을 지나온 듯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척추 골밀도가 낮으면 노년에 다치지 않아도 소리 없이 골절이 올 수 있다. 꼬부랑 할머니 되게 하는 주범이라, 내 딴에는 단단히 경각심을 갖고 있었는데….

무서워만 하고 예방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대가를 치렀다. 오십 중반에 골다공증에 해당하는 골밀도인 것이다. 뼈째 먹는 생선이나 유제품을 제대로 챙겨 먹지 않고, 운동 부족에 커피를 많이 마신 탓이었나 보다. 약물치료에 이어 주사까지 맞으며 가까스로 골감소증까지 올렸으나 운동을 더 진지하게 하지는 못했다. 중력 받는 유산소 운동과 더불어 근력 운동이 많이 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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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웰컴 투 갱년기』 이화정 지음, 오도카니, 2025

** 『완경 선언: 팩트와 페미니즘을 무기로 내 몸과 마음을 지키는 방법』 제니퍼 건터 지음 김희정 안진희 정승연 염지선 옮김, 생각의 힘,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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