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로미오와 줄리엣의 갱년기 성생활

다양한 경우의 수

by 램즈이어

로미오와 줄리엣이 오십 대까지 무사히 살았다면 그들의 성(性) 생활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옛 영화에서 관능적인 올리비아 핫세와 레너드 위팅의 첫날밤은 뜨겁기 그지없다. 물론 삼십여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면 부부관계도 사뭇 달라질 것이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나올 수 있겠다. 그 양상은 한 축(x)은 두 사람의 사랑과 의사소통의 긴밀함이 다른 축(y)은 육신의 건강상태가 되어 어떤 함수의 그래프로 표현되리라.

갱년기를 맞은 로미오와 줄리엣들의 다양한 성생활을 진료실에서 엿볼 수 있었다.

만약 한쪽이 질병이 있더라도 부부가 한마음이면 끈끈한 동지애로 육체적인 친밀감을 키워나간다. 전형적인 성생활의 형태가 아니라도.

“이제 우리는 적게 섹스하는 대신 포옹하거나 손을 잡거나 키스하기를 예전보다 더 많이 합니다.”*

“방사선 치료 후로 오르가슴이 느껴지지 않아요.”

어떤 분이 속상한 마음을 살짝 토로했다.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듣기만 하는데 그분 표정이 밝아 좋은 부부애를 가늠할 수 있었다.

반면 한 명이라도 육신의 병세가 심해지면 성(性)에 대한 이야기마저 비현실적이 되고 만다.

많은 경우 특별한 질병이 없으나 호르몬 저하로 성욕이 감퇴하여 예전보다 드문 성생활을 한다. 갱년기에 여성이 남성 보다 리비도 감소 빈도가 두 세배 크다고 하니 주로 여자 쪽 때문에 그리 되었을 것이다.

“귀찮아요.”

“한지 오래되었어요. 생각도 잘 안 나요.”

남편분의 욕구가 걱정이 된다. 여성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스스로 매력적이라고 느끼게 해 준다니까 아무쪼록 여러모로 도움을 주려 한다.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어려움을 해결해 가면서 섹스의 화롯불을 간직하는 것이다.

완경 후에는 점점 질이 건조해지고 점막이 얇아지면서 삽입 및 성교 중에 불편감을 느낀다. 건조함 뻑뻑함을 넘어 심한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니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방법이 있답니다.”

“정말요?”

질 크림과 여성호르몬제, 케겔 운동이 도움 되어요.”

이 약들은 꽤 만족도가 좋았던 것 같다. 비아그라 등을 타러 오는 남성들도 쑥스럽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는 편이다.

서구 의사들은 성생활에서 현역의 자리를 유지하도록 더 구체적으로 안내하는 것 같다. 독일의 실라 드 리즈 박사는 다음과 같은 3대 거짓말에 넘어가지 말라고 한다. **

1. 50세 넘은 여자는 성생활을 싫어한다.

2. 나이가 들면 스킨십을 안 한다.

3. 섹스는 한번 배우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p147-150)

갱년기의 우여곡절로 잠시 휴면상태였다면 새롭게 배워야 한다면서 적극적인 플랜을 세워주고 있다. 2-3주 간의 에스트로겐 크림을 꾸준히 바르라. 질 CO2 레이저 치료에 이어 성인용품 (여성용 바이브레이터)까지도 사용해 보시라 등등.

한쪽의 욕구가 너무 커서-특히 남자 쪽이- 위험스러워진 경우는 진료실에서 잘 접해 보지 못했다. 가정의 위기이고 비밀이다 보니 부부 상담 센터 등 다른 곳을 찾아갔을 것이다. 책에서 보았던 케이스다.


겁 없이 낯설디 낯선 남성의 갱년기로 빠져든 (나의) 로미오는 더욱 애정을 갈구했다. 그러나 나는 내게만 관심이 있었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자 했으며,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중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나는 남편의 필요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

빛나는 청춘을 뒤로하고 중년의 위기에 휘둘린 남편은 나와의 임박한 이별을 위해 하루빨리 새로운 여자를 찾기에 급급했다. 최고의 성적(性的) 능력을 발휘하게 할 여자 말이다. 남편이 늘 에로스적 상승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내게 자못 충격으로 다가왔다. (p23) ***

우리 부부도 내가 갱년기 증상으로 힘들었던 기간과 남편이 정서적으로 아팠을 때는 엄두를 못 냈다. 두 사람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었을 때 약도 먹고 질 크림 등을 바르면서 불씨를 살려갔다. 이런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는데, 우리에게도 좋고, 약의 반응이나 사용상의 불편함 등을 직접 체크할 수 있어서 환자 상담에도 유익했다.

빈 둥지가 되니 방해꾼들이 사라졌다. 시간과 장소의 자유로움을 실감하다 잘 되지 않아서 속상한 날이 있다. 이런 때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절절히 느낀다. 반대로 순조로운 경우는 마치 몸의 모든 부분이 젊어진 것처럼 기분이 좋다.

---

* 『완경 일기』 다시 스타인키 지음, 박소현 옮김, 민음사, 2021년

** 『불 위의 여자』 실라 드 리즈 지음, 문항심 옮김, 은행나무, 2021년

*** 『중년의 위기를 맞은 로미오와 줄리엣』 브리기테 히로니무스 지음, 유영미 옮김, 나무 생각 2006년


대문의 사진: 《커플(Couple)》

루이즈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 호암 미술관

keyword
이전 06화의학의 동아줄을 붙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