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시절부터 단테의 작품을 정식으로 읽지도 않고서 그를 짝사랑의 동지로 생각했다. 나랑 같은 과(科) 구나 하면서. 베아트리체와 제대로 이야기 한번 못 나누어 봤다는 사실이 무척 맘에 들었다. 가엾이 여기는 마음과 함께 동지애를 품다가 마지막 끝자락에는 쬐끔 우월감도 느꼈다. 나는 몇 번 이야기를 나눠 봤는데 하면서.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용기가 부족해서 일 것이다. 80년도에는 여성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떤 고백을 여자가 먼저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은연중에 수동적인 역할을 요구받음) 그다음 이유는 고상한 환상이 깨질까 봐서다. 어렴풋이 그 사람도 속물적인 어떤 모습을 갖고 있으리라는 것을 감지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게 될까 봐 혹은 차마 볼 용기가 없어서 안전한 짝사랑의 오두막으로 도망가는 것이다. 온화하고 용감한 꽃 미남 왕자님이 사실은 개구리였다 라는 동화 속 이야기와 비슷한 일이 벌어질까 봐.
짝사랑하던 사람과 처음으로 긴 대화를 나누고서 혼란을 겪었던 기억이 난다. 그 사람을 더 알게 되었다는 기쁨, 함께 차도 마시고 술도 마셨다는 뿌듯함에 이어 나의 환상 속 그 멋진 사람이 사라진 슬픔, 그러면 이 사랑을 어떻게 꾸려 나가야 하나 하는 난감함 등으로.
현실 세계에서 남학생들과 어쩌고 저쩌고 대수롭지 않게 만남을 이어가다가 사랑의 감정을 싹 틔우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환상의 세계를 넘나들지 않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 어느 정도 환상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 스케일이 그리 크지 않은 사람들이.
고차원의 영 육 혼을 갖고 있는 듯한 어떤 사람을 연모했는데 (아마도 지상 사람이 아닌 차원의?) 만나보니 훌륭한 사람이긴 하지만 결국 가련한 땅의 사람이었다는 괴로움이다.
이런 다이내믹은 내향적이며 비사교적이고 독서 등으로 상상의 세계가 풍성한 사람에게 주로 일어나는 것 같다.『새로운 인생』에서 단테가 기술한 사랑의 행태가 (생활형 인간의 눈으로 보면 바보처럼 보이는) 속속 이해가 된다. 조금 이야기가 빗나가지만 키엘케고르가 사랑하는 약혼녀 레기네 올센과 결혼하지 않은 것도 충분히 공감된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었다. 깊은 사유와 성찰이 몸에 밴 철학자는 현실의 무대에서 부부의 배역으로 소소한 일상을 감당하는 것이 자신 없었을 것이다.
단테의 경우는 베아트리체의 인품과 미모가 워낙 출중했고 시인의 인문학적인 소양이 풍부하여, 지고(至高)의 여성이 탄생한 듯하다. 현실 세계에서 별 교제를 못해 본 채 24세 꽃다운 나이로 떠나보냈으므로 시인의 마음속에 평생토록 고차원의 인격으로 남을 수 있었다.
** 특수 상대성 이론:
1. 빛의 속도(c)는 일정하다. 진실한 사랑은 빛의 속도와 같다.
2. 질량이 에너지로, 혹은 에너지가 질량으로 바뀔 수 있다. E = mc² 공식에 의해 에너지와 질량은 등가이고 변환 가능하다.
핵분열: 질량수가 큰 원자핵이 중성자와 충돌해 가벼운 원자핵 2개로 쪼개지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방출된다.
열정이 큰 사람이 진실한 사랑(c²)을 할 때 그런데 이 사랑이 마음 찢어지는 짝사랑일 때 (핵분열) 원자 폭탄과 같은 창조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다.
3. 관측자에 대해 빠른 속도로 운동하는 물체는 시간이 느려진다.
모든 사랑은 짝사랑이다. 두 사람이 사랑할 때라도 한 사람은 한숨짓고 있다. 서로 사랑의 깊이가 다르고 타이밍이 종종 어긋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향해 간절할 때 그쪽에서 오는 반응은 한없이 더디게 느껴진다.
** 아인쉬타인의 광양자 가설, 빛의 이중성: 빛은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모두 갖는다
진실한 사랑이라 하더라도 일편단심과 변덕의 속성을 모두 갖고 있다.
** 일반 상대성 이론:
중력의 본질은 시공간의 휘어짐, 시공간 왜곡(곡률)의 결과물이다
시공간은 4차원, 즉 시간과 공간이 결합된 형태의 연속체이다.
짝사랑은 시공간 왜곡으로 빚어진 환상의 결과물이다. 시간과 공간이 결합된 형태의 연속체가 발산하는 왜곡된 4차원의 매력은 거절할 수 없는 힘이 있다.
** 양자 역학에서
보어의 상보성: 원자 내부에는 물체의 여러 상태가 동시에 존재한다. 서로 배타적인 두 명제를 보완적으로 합쳐야 비로소 이러한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라 할지라도 사랑과 미움이 함께 존재한다. 상호 보완하는 기술이 있어야 헤어지지 않고 결실을 맺는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수소원자의 내부에서 전자의 위치와 속도,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자의 궤도는 그저 확률적으로만 가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을 간절히 사랑하고 있을 때라도 내 마음속 사랑의 위치와 속도,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정확히 가늠할 수 없다. 나도 내 마음을 알 수 없고 그저 시간과 확률에 맡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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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단테 알리기에리, 로세티. 박우수 옮김, 민음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