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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Oct 27. 2024

피렌체의 별들이 울던 날

베아트리체의 죽음,『새로운 인생』(6)

 피렌체 하면 단테와 베아트리체, 보티첼리와 그 여인들, 모나리자가 떠오른다. (메디치 가문의 이야기는 건너뛰기로 하고) <냉정과 열정사이> 두 주인공도 이 도시에서 사랑을 이룬다. 문예부흥에 있어서나 로맨스에 있어서나 화려한 이력의 도시가 아닐 수 없다.

 1290년 단테에 의하면 가장 아름다운 이 여인이(베아트리체) 우리 곁을 떠나간 이후로 온 도시 전체가, 말하자면 위엄을 잃어버린 과부같이 되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시인의 개인적인 느낌이라고만 할 수도 없는 것이, 그 당시 베아트리체는 피렌체에서 칭송받던 일종의 셀럽(celebrity)이었다.


 마침내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어서 어디든 그녀가 길을 가면 사람들이 그녀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것은 나에게 정말로 큰 기쁨이었다. 누구에게든 그녀가 가까이 가면, 그는 마음에 진실됨과 겸손함이 가득 채워져서 감히 고개를 들거나 그녀의 인사에 답례를 보내지도 못했다. *  

   

 단테 자신은 그녀를 떠나보냄이 영혼이 파괴될 정도의 슬픔이었다고 말하고, 보카치오는 그가 샘처럼 눈물을 펑펑 쏟아내어 사람들이 그가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눈물을 쏟아 낼 수 있는 물을 마셨나 궁금해했다고 적었다. **      

 사람들은 단테의 열정이(그리움이) 너무 커서 그가 곧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보기에도 피골이 상접한 비참한 외모가 되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단테는 얼마 지나 정신을 차리고 소네트를 지으며 슬픔을 달랜다. 시간이 약이 된 것일까?『새로운 인생』에서 고백한 바에 의하면 그는 사실 베아트리체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소천하기 한참 전에 그녀가 하늘나라에 가는 아주 생생한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여인들이 슬픈 불빛처럼 거리를 내달렸소. 머리를 풀어헤치고, 공포에 질린, 끔찍한 눈빛을 하고,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 태양빛이 사라졌고, 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각자 서로를 보고 울었소.

새들은 날던 중에 하늘에서 떨어졌고 땅이 갑자기 흔들렸소. *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진 꿈이다. 인문학적인 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꿈도 이렇게 찬란한 영상으로 꾸나보다. 거리의 모습은 성경에 나오는 세상 종말의 날을 연상시킨다. 베아트리체의 죽음은 단테에게 있어서는 세상의 마지막이나 다름없는 충격일 테니까. 이어서 천사들이 그를 베아트리체의 주검으로 데려가는 장면이 있다.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겸손해서 나는 평화롭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소.---

슬픔 가운데서 나도 너무 겸손해져서,

그녀에게서 심오한 겸손을 보았기에, 이렇게 말했소.

죽음이여 나 이제부터 그대를 지극히 선한 존재로

또 매우 고귀하고 달콤한 안식으로 여기겠노라.

나의 사랑스러운 여인이 그대와 함께 머물게 되었으니.

알고 보니, 증오가 아니라 연민이 그대의 마음---." *  

   

 여기서 단테는 죽음과 마주하고 대화를 나눈다. 그(죽음)를 악한 대적으로 여기지 않고 선의(善意)의 우군으로 대하겠다고 하면서. 그는 이 꿈에서 깨어난 후부터 자신과 그녀의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한 듯하다. 이 환상이 은연중 마음의 준비가 되어, 실제로 베아트리체를 잃은 후 아주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를 애도하는 소네트를 짓는 일이  큰 치유의 힘을 어서일까? 오히려 상실의 아픔을 건강하게 딛고 일어선 사람이 되지 않았나 싶다. 사랑 타령에 머물지 않고 이내 현실로 돌아와 철학을 공부하며 공직에 몸 담는다. 20년 가까운 망명의 고단함 속에서 틈틈이 글을 써낸다. 이제 베아트리체는 자기모순적이고 규정하기 힘든 단테의 사랑을 마음껏 펼치는 너른 마당이 되었다. ***

 1302년(베아트리체 소천 12년 후) 단테는 교황창 파견 사신으로 로마에 머물 때 추방형을 선고받고 그 후 영영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 도시는 오늘날까지 그의 유해도 돌려받지 못했다. 그해 피렌체의 별들은 다시 한번 울었을 것이다. 훗날 사람들에게 다음처럼 새겨지는, 르네상스의 막을 올리는 이가 어이없이 쫓겨나는 것을 보면서.


 세속적 연애 감정과 사랑의 영원한 가치를  연결할 줄 아는 비범한 통찰력의 철학자, 합리적 사고와 역사의식을 소유한 지식인, 정의로운 도시를(도시 국가) 세워보고자 했던 실천가, 피렌체 언어를 격상시킨 선구자, 뛰어난 상상력과 시적 언어 감각의 대문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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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단테 알리기에리, 로세티. 박우수 옮김, 민음사 2005

** 보카치오의『단테의 생애』(The Earliest Lives of Dante, tr. by James Robinson Smith. 박우수 옮김. 민음사)

***『단테』박상진, 아르떼의 클래식 클라우드,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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