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91일의 이야기 (2023.06.09.)
확실히 바로바로 글로 써 두어야 잊지 않는 것 같다. 감기 기운으로 힘들었던 내가 열이 받아서 약간의 냉전상태였던 우리는 어제 다시 화해를 하고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남편이 "그런데 아까 말하려다가 타이밍을 못 잡아서 말을 못 했는데"라고 하길래 나는 정말 바보 같았던 게 어디 또 지인이랑 당일치기 여행 간다고 하려는 줄 알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왜, 또 어디 가게?"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왔다. 그랬더니 "지난번에 봤던 면접 결과 말이야. 오늘 받았어. 떨어졌대."
남편은 아무래도 약간 기대를 했던 것 같다. 나는 이미 일주일이 지났는데 연락이 없는 걸 보고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별 생각은 안 했는데 남편은 꼬리 내린 강아지처럼 시무룩해 보였다. 어제 오전에 문제가 온 거였는데 미리 보기로 보다 보니 "안녕하세요, ○○입니다. 귀하의 지원에 대하여"라고만 보여서 전체 내용이 보이기 전이라 아마 남편은 합격으로 알았나 보다... 속상할 만도 하다. 나라도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갔을 것 같다.
또 어디 넣을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남편이 먼저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할 까봐. 너무 쉬었어."라고 하길래 나는 막상 "아르바이트할 생각도 안 하나?"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아르바이트를 구해버리면 또 면접이 잡히면 시간 빼고 이러는 게 좀 어려울 것 같았다. 근데 뭐 남편은 시간 빼기 나름이라면서 라길래 그래도 생각은 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나에게 공고를 찾아보지 말라고 하지만 내 성격상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래서 찾아보면서도 전달하지 않고만 있다. 남동생에게 요즘 상황을 설명했더니 나보고 그랬다. "타자화"가 안되었다고. 본인이 취준 할 때 왜 엄마가 하던 행동을 누나가 그대로 하고 있냐면서 3개월이면 아직 괜찮다고 기다려주면 안 되냐 하길래 "결혼기념일 때는 무직 상태가 아니면 좋겠어"라고 말하니 "아.. 얼마 안 남았네"라더라. 그래! 3개월 남았다고 이제... 계속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나라면 안 그럴 텐데", "나라면 이렇게 할 텐데"를 해버리니 만족이 안 될 수밖에. 나랑 남편은 전혀 다른 사람인데 말이다. 회사 선배에게도 이야기했지만, 아직 빛을 보지 못한 거라면서 기다려 달라고 하더라. 다시 또 이렇게 이너피스의 시간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