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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아 Jul 22. 2024

그새 또 짙어진 감정이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다가온 것들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당황할 수밖에 없는 거였다. 그래도 자리를 비켜주었다. 짧게 머무를지, 길게 머무를지 알 수는 없었지만 지내는 동안은 힘들지 않길 바랐다. 괜찮은 날과 괜찮지 않은 날들의 반복 속에서 그것들도 참 많이 지친 듯했다. 그 모습이 내가 가진 것들과 겹쳐져 보였다. 그래서 더욱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문득 떠오르는 아린 감정에 눈물이 맺혔다가, 매섭게 몰려오는 기억에 눈을 감았다가, 오랫동안 느껴지는 시간에 숨을 참았다고 했다. 결국 찾아올 곳이 여기 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다가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발길이 향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찬찬히 들려주는 이야기를 옆에 서서 묵묵히 들었다. 그러나 똑같이 이어지는 날들 속에서 과연 언제 잊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푸념하는 그것들에게는 들리지 않게, 그럴 수는 없다고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그것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어쩐지 나도 모르게, 가진 버거움이 조금이라도 덜어지는 순간까지 있어도 된다고 끄덕였다.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 나에겐 어떤 의미였는지 그것들이 몰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내게 남은 건 그 후의 것들이었으니까.


불편한 마음으로 지내는 것이 삶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느끼며 지냈다. 그것들의 삶과 나의 삶이 아주 잘 어우러져서 내가 가는 곳엔 항상 그것들이 먼저 도착해있었고, 내가 있는 곳엔 항상 그것들이 불쑥 찾아왔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면서 나는 그것들과 끊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젠 떠나겠다며 다신 안 올 듯 돌아서는 그것들의 뒷모습을 보며, 꼭 다시 또 보게 될 거라는 확신을 담아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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