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지막 산책길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새벽까지 모카를 품에 안고 하염없이 걸었다.
잠들고 싶지 않은 마음을 달래며, 겨우 잠에 들었다.
눈을 뜨는 것도 세상에서 가장 어려웠던 날.
간절히 오지 않기를 바랐건만,
오늘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매일 아침이면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밥을 달라 보채던 익숙한 풍경.
하지만 오늘의 아침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첫째 모카가 떠나는 날임을, 다른 아이들도 알고 있는 듯, 집 안 가득 깊은 침묵이 감돌았다.
서울에서 분당 운중로까지.
모카를 데리고 병원에 가기 위해,
무거운 몸과 마음을 억지로 일으켰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외과 수의사가 계신 병원이라고, 차도 없고 운전도 못 하는 내가 아이를 품에 안고 대중교통으로 수차례 오갔던 곳이었다.
그 모든 길이 쉽지 않았지만,
단 한 번도 모카는 투정을 부린 적이 없었다.
출발 전, 모카는 기특하게도 스스로 대소변을 보았다.
하지만 씻는 건 싫다며 온몸으로 거부했다.
그조차도 모카다운 고집 같아, 마지막은 아이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지저분한 모습을 보이는 창피함은 잠깐일 뿐,
내게는 모카가 우선이었다.
떠날 준비를 하며 모카를 위해 준비한 치즈 케이크 한 조각을 건넸다.
처음 먹어보는 치즈케이크를 작은 입으로 맛있게, 예쁘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웃음이 나려 했지만, 이내 마음이 저릿해졌다.
그동안 주지 못한 게 미안했고, 더 오래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가슴 아팠다.
집을 나서기 전,
가족들과 차례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눈부신 햇살과 살랑이는 봄바람.
모든 것이 아름다운 봄날이었지만,
내 발걸음은 마음만큼이나 무겁고 더뎠다.
모카와 함께 가는 마지막 길.
늘 조용하고 얌전했던 아이가 오늘은 마치 마지막을 아는 듯, 차 안에서 자꾸만 칭얼거렸다.
멀게만 느껴지던 병원까지의 길이 오늘따라 유난히 짧게만 느껴졌고, 어느새 우리는 분당에 도착했다.
병원까지 도착을 했지만
바로 진행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병원의 양해를 구하고,
나는 모카를 품에 안고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따스한 햇살, 부드러운 바람,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작고 깊은 눈망울.
모카를 꼭 끌어안으며, 여전히 이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하는 간절하고도 애끓는 마음...
아이가 아픈 뒤로 수없이 울었지만,
오늘은 눈물이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짧은 산책을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여러 차례 수술을 함께한 병원이기에,
선생님들 모두 모카를 기억해 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방 한편에서 따뜻한 배려와 함께 충분한 시간을 갖게 해 주셨다.
나는 잠시도 모카를 품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반려견을 떠나보낼 때
마지막으로 건넨다는 초콜릿.
모카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이는 초콜릿이었다.
진행 시간에 맞춰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챙겨 왔던 초콜릿 두 조각을 건넸다.
내가 눈물을 흘리는 사이, 초콜릿 두 조각을 모카는 야무지게, 참 맛있게도 먹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쁘고 고마웠던지.
마치 “나, 정말 괜찮아요.” 하고 나에게 온몸으로 말하는 듯했다.
반려동물들이 싫어하는 병원에서조차
이 작은 아이는 마지막까지 나보다도 씩씩하고 초연하기만 했다.
모카의 전부였던 내가 내려야 했던 결정이 '안락사'라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마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채 강요당하는 선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선택이 옳았는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보내주는 것이 마지막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라 믿어보기로 했다.
작고 여린 아이였지만,
생명의 무게는 단 한순간도 가볍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마지막까지 모카를 내 품에 안고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안락사는 장재영 원장님의 수술 일정으로
부원장님이 맡아주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하고 세심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충분한 설명과 함께 모든 과정을 이끌어주셨다.
내 품 안에서 평온하게 안긴 상태로 마취제가 들어가자 아이의 몸은 서서히 힘이 빠지며 축 늘어졌다.
마취만으로도 내 영혼의 한 조각이 함께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부원장님은 마취가 충분히 이루어졌는지 몇 차례 꼼꼼한 확인과 내가 준비가 되었는지
모두 확인하시고 마지막 약물을 조심스럽게 투여하셨다.
모카의 마지막 눈빛...
그렇게,
모카는 내 품 안에서 조용히,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과 함께 나도 모르게 읊조리듯 입에서 터져 나왔다.
애써 붙잡고 있던 마음이 모두 쏟아졌다.
모카의 따스한 체온이 사라지는 순간에도 나는 아이를 안은 채, 그렇게 무너지고 있었다.
그때,
수술복도 채 갈아입지 못하신 장재영 원장님께서 급히 들어오셨다.
이미 숨을 거둔 모카,
못 본 사이 온몸을 뒤덮은 종양을 보신 원장님도 당황하신 듯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셨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염없이 눈물 흘리는 내게 원장님은 진심 어린 위로와 함께 마지막 가는 길
깨끗하게 보내주기 위해 목욕을 시켜주신다고 하셨다.
수술복을 입은 채 모카를 직접 품에 안고 가셨다.
얼마 뒤 모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주 뽀송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내게 왔다.
모카 가는 길이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천연실크로 직접 만들었던 수의보
이별을 준비하면서 손수 만들었던 수의보를 꺼냈다.
수술과 넥카라로 지쳐 있었던 아이가 갑갑하지 않도록, 일반 수의 대신 손바느질로 정성껏 만든 수의보였다. 살포시 덮어주자, 마치 천사가 잠든 듯 고요하게 누워있는 모카의 모습이 내게는 여전히 꽃처럼 곱기만 했다.
부원장님께서는 모카가 어디로 가는지 물으셨고,
내가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할 거라 답하자 종이관을 따로 챙겨주셨다.
그 속에 모카를 조심스레 눕히고, 품에 꼭 안았다.
이제는 마지막 이별을 향하는 길.
모카를 품에 안은 채, 예약한 택시에 올랐다.
차창 밖엔 따사로운 햇살과 들꽃이 가득했다.
나는 이동하는 내내
품에 안은 모카를 놓지 않았다.
모카가 투병하던 1년여의 시간들.
진료와 수술이 이어지던 동안,
저는 늘 경황이 없었습니다.
정신없는 나날 속에서 엉뚱한 곳으로 찾아가 병원 예약 시간에 늦기도 했고,
밤새 흐르는 눈물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겨우 잠든 날은 수술 시간에 지각하는 실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병원에서 대기하는 동안, 한쪽 구석에서 숨죽여 울던 저에게 선생님들은 화장지와 함께 위로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시간,
그리고 가장 힘겹고 경황없던
모카가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섬세하고 따뜻한 배려로 함께 해주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