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한 마지막 봄
살면서 이토록 간절했던 순간이 있었을까.
시간을 멈출 수 없다면, 내 생명을 5년이든,
10년이든 나눠주고 싶었다.
제발 모카가 조금만 더 내 곁에 머물러주기를.
최소한, 12월 모카의 생일까지는 함께 있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간절함은 흐르는 시간 앞에 한없이 무력했고, 병색은 짙어져만 갔다.
늘 반짝이던 모카의 빛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장재영 동물병원과 계속 소통하며 상의했지만,
모카를 보내는 날에 대해 병원 측에서도 명확한 답을 주는 건 조심스러워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수의사의 길을 택한 분들이
떠나보내는 결정을 내리는 일은 아프고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추운 계절에 혼자 떠나보내는 건 아닌 것 같아, 따뜻한 봄까지만이라도 함께하길 바랐다.
다행히도 모카는 3월까지 잘 견뎌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모카의 하반신을 뒤덮은 종양으로 인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수없이 비틀거리며 쓰러지자, 결국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날로 정했다.
아직은 모카와 함께할 시간을 갖고 보낼 준비가 필요했다.
그 며칠이 너무나도 귀하여 더욱 정성껏 화식을 만들었고,
닭고기·소고기·전복 등
모카가 좋아하는 것들은 다 해주었다.
대견하게도 항상 맛있게 먹어주었다.
이렇게나 잘 먹는 아이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모카는 나의 손길을 거부하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털을 빗는 것도, 눈곱을 닦는 일, 어떠한 케어도 다 거부하고 으르렁 거리기까지 했다.
더는 자신을 위해 고생하지 말라는 것이었을까?
그럴 때마다 나는 모카에게
이별을 아는 듯 모카의 눈빛은 늘 나를 향해있었다.
한 번도 아프다는 투정이나 표현은 없었고,
케어하는 내 손길만 거부했다.
그러고는 아침마다 눈을 뜨면 반가움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내게 얼굴을 들이밀던 모카.
아마 모카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런 가운데 유일하게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우리 둘만의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던 건 ‘산책’이었다.
그 시간에만 내게 모든 걸 의지하고 내 손길을 전혀 거부하지 않았다.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모카를 안고 싶어 산책길에 나섰다.
스스로 걷지 못하게 된 모카는 개모차(강아지 유모차)에 태우거나 품에 안고 걸어야만 했다.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 나는 지칠 때까지 하염없이 걸었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얼마 남지 않은 귀한 시간들이었다.
이별이 다가올수록 하루도 빠짐없이 모카에게 말했다.
알았다는 듯 모카는
대답대신 내게 조용히 눈빛을 건넸다.
그 눈빛 하나에 나는 다시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건강하던 시절의 모카는 산책만 나가면 신이 나서 뒤도 안 돌아보고 앞장서 걷던 씩씩한 아이였다.
영역 표시와 함께 바깥세상을 즐기고 지나는 사람들, 강아지 친구들과 인사하기 바빴다.
하지만 이별이 다가올수록 모카는 더 이상 세상 어디에도 관심이 없었다.
산책길에서도 눈을 떼지 않고 오직 나만을 바라보았다.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애틋한 눈빛으로.
그 눈빛을 볼 때마다 마음이 저릿했고, 나 역시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모카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해두었던 4월 17일이 가까워지자,
굳은 결심이 무너졌다.
도저히 보낼 수가 없었다.
다시 병원에 연락을 드렸고, 선생님은 나의 마음을 헤아려 22일로 연기해 주셨다.
단 5일.
그 시간 역시 너무나 귀했다.
하지만 또다시 다가오는 4월 22일.
그날은 하루 종일 비가 예보되어 있었다.
그리고
라일락 향기 가득한 4월이었지만
봄이라기엔 제법 쌀쌀했다.
하지만 모카를 안고 걷던 산책길은
서로의 온기로 가득해, 따스하기만 했다.
모든 케어를 거부한 채
나만을 바라보던 모카의 눈빛은 마치
라고 내게 조용히 용기를 건네는 듯했다.
언제나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던,
나의 가장 따뜻한 친구.
보내기 힘겨워하는 나보다 더 초연한 모카였다.
D-day : 4월 29일 새벽
잠들기 어려워 나왔던 산책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