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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이 사그라들다 *

마지막 수술 그리고 시한부 통보

by 최은아 Choi ena




2024년 12월, 세 번째 수술 후

장재영 외과동물병원 원장님은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종양은… 다시 생길 겁니다.

이번이 마지막 수술로, 더는 수술이 어렵습니다.

재발 시 안락사를 고민하셔야 할 수도 있어요.”


어느 정도 예상했던 말씀이지만,

끝내 외면하고 싶던 말이었다.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자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혹시, 만약…

기적처럼 종양이 다시 생기지 않는다거나

다리 쪽에만 생긴다면 다리 절단 수술은 가능한가요?”


“그럴 경우엔 절단도 고려해 볼 수 있겠지만…

안타깝지만 종양은 다시 생길 겁니다.”


절망이라는 단어만으로

모카의 상황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었다.

우리를 놓아주지 않고

수시로 찾아드는 어둠 속에서

기적을 바라는 것조차 욕심이 되어버렸다.


나는 한없이 추락하는 마음을 애써 부여잡으며

어느 때보다도 더 간절히 바랐다.

제발, 종양이 천천히 퍼지기를.

아니면 다리 쪽으로만 올라오기를.

하루만이라도 더 함께할 수 있기를.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도

나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기 위해 애를 썼다.


종양 억제에 좋다는 모든 것을 찾았다.

잠을 쪼개 매일 한약재를 달이고,

정성껏 화식을 준비했다.

다행히 알레르기 반응도 없었고,

무엇보다 모카는 매 끼니를 기분 좋게,

아주 맛있게 먹어주었다.


그 모습 하나만으로도

내 피곤함이나 번거로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종양 발생 부위를 매일 정성껏 마사지했다.

예전 엄마와 할머니가 해주시던

‘엄마 손은 약손’이라는 말처럼,

내 손끝에 마음을 담았다.




하지만 나의 정성 어린 시간과

간절한 마음은 또다시 무너졌다.

수술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종양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병원에서는

“아직은 림프절이 부은 것일 수도 있다”며

조금 더 지켜보자 하셨지만,

나를 감싸는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은 왜 항상 틀리지 않을까?


종양은 야속하게도 매일 자라났고

수술 후 두 달이 채 되기도 전에

모카의 다리는 단단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모카는 여전히 아픈 내색 한 번 없었다.

다만 내가 케어를 해준다거나 아이들이 와서 만지면 조금씩 짜증을 내고 화를 냈다.

늘 그래왔듯 배변활동 등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내겠다는 고집스럽고 단단한 아이였다.

출근하는 나를 변함없이 밝은 얼굴로 씩씩하게 배웅했다.

나는 모카와의 이별이 가까워질수록

그 무엇보다 회사에 가는 것이 힘겨워졌다.



모카와 떨어져 있는 그 긴 시간이

나에겐 가장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안락사를 고려해야 한다는 통보 이후,

일 중독자에 완벽한 이성주의자였던 내가 매일같이 울면서 겨우겨우 일하는 날들이었다.

평소엔 좀처럼 무너지지 않던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무너졌다.





회사에 1개월만이라도 휴직이나

파트타임 전환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가족이 아닌 반려동물 사유는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결국 나는 퇴사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몸이 불편한 모카 곁에 있고 싶었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기에 더는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는 퇴사 요청조차 여러 번 반려했다.

동물이라는 이유로,

내게 가족인 존재를 끝내 회사는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동안 지각 한번 해본 적 없이 성실히 일했고 업무평가도 늘 상위권이었지만

나의 입장은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그저 회사의 입장만 돌아보는 것 같아 야속했다.


더는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퇴사 의사를 밝힌 지 4개월이 지나서야 연차 사용 승인이 되었고, 남은 모든 연차를 사용해 드디어 출근하지 않게 되었다.






2025년 1월.

아무리 아파도 맑은 눈빛만큼은 변함없는 모카






이제야 모카와 하루하루 온전히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함께하는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귀한지

새삼 더 깊이 깨달았다.


특별한 곳에 가지 않아도,

언가를 거창하게 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혼자가 아닌 둘이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특별해지는 마법 같은 시간들이었다.



내게 모카를 완벽히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혹은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아니면…

지금 이 순간 그대로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고 또 바랐던, 애달픈 간절함이 가득한

우리의 마지막 봄날이었다.

















짙게 내려앉은 어둠은

나 자신의 무력함을

마주하는 시간들이었다.


세 차례의 수술을 이겨낸 모카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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