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 자비로운 죽음 - 안락사
우리는 모두 매일,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삶의 주체로서
다양한 고민과 결정 속에서 하루를 만들어간다.
매일매일이 수많은 고민과 선택의 날들이었지만,
내 삶을 뒤흔들 만큼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운 고민 앞에 서게 되었다.
나의 선택에 따라
모카에게 지금보다 더 극심한 고통을 겪게 할 수도 있고,
우리의 영원한 이별이라는 결말뿐이었다.
그 어떤 것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잔인하고도 가혹한 시간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애써 외면한 채,
오직 모카만을 생각하며 모카 곁에 머물렀다.
정성을 다하고, 간절함이 깊어지면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미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종양이라는 어둠은
마치 내 간절함을 비웃듯
계속해서 빠르게 자라났다.
예전의 나는 불치병에 걸리거나
나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주저 없이 존엄사를 택하겠다고 생각했었다.
TV에서 보던 스위스 같은 나라에서
스스로 삶을 마무리하겠노라고.
연명치료나 가족에게 짐이 되는 건 결코 할 수 없는 무의미한 희망고문이라 생각했었다.
처음 모카를 키우기 시작했을 때도 그 생각은 같았다.
반려동물이 사고나 병으로 아프게 되었을 때
수천만 원을 들여 치료하는 사람들을 보며
한편으론 ‘과연 나는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불치병에 큰 비용을 쓰는 대신
차라리 다른 생명을 살리는 데
그 돈을 쓰는 게 더 의미 있다고 믿었다.
안락사가 고통을 덜어주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2025년 4월의 모카
종양은 계속해서 자라고 몇 배로 부었다
2025년 4월의 모카
병색이 짙어질수록 모카 콧잔등의 털은 사라지고 점들이 올라오며 검붉게 변했다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병원비와 수술비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카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단 1년 만이라도,
아니 반년만이라도 더 함께할 수 있다면
빚을 내서라도 수술이든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장재영 외과 동물병원 원장님이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안락사에 대한 언급을 하셨음에도,
다른 동물병원 등을 찾아보았지만
" 장재영 원장님이 수술할 수 없다면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수술이나 치료는 불가능합니다."
라는 답변만을 받았다.
이제 더는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다시 확인했을 뿐이었다.
종양이 모카의 하반신을 빠르게 덮어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매일 눈물로 하루를 보냈다.
숨조차 쉬기 어려울 만큼 가슴이 무거웠다.
아이의 고통이 점점 커져가는 걸 알기에
내가 고통을 없애줘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도무지 따라주지 않았다.
나는 마치 벼랑 끝에 내몰린 듯한 현실 앞에
서있는 것조차 버거웠다.
하지만 나의 애달픈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악성 종양은 무섭도록 빠르게 자라났다.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강한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악성종양에서는 숨 막히도록 낯선 악취가 난다.
나는 이 냄새가 '죽음의 냄새'로 느껴졌다.
이 냄새가 코끝에 닿을 때마다
마치 영혼이 요동치듯 흔들렸다.
점점 죽음의 냄새가 온 집안을 채울수록
나는 한없이 무너졌다.
결국 나는 장재영 원장님께
모카의 상태를 자주 공유하며
안락사 시기를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지 여쭈었다.
원장님도 쉽게 결정을 내리시기란 어려우셨기에
늘 조심스러우셨다.
염려가 되신 원장님이 직접 전화를 주시기도 했지만,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전화조차 절망스럽고 두려웠다.
사형선고처럼 느껴지는 현실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회피하고만 싶었다.
기적을 바라던 기도에서
종양의 성장이 멈추기를 기도했었지만 ,
안락사를 결정해야만 하는 날이 다가옴을 느끼면서
기도의 내용은 다시 바뀌었다.
작은 생명이었지만 너무나 소중했던
모카를 통해 나는 생명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남겨진 이의 슬픔과 고통이
얼마나 깊고 아픈 것인지를.
존엄사나 안락사가
결코 모두를 위한 선택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안락사(安樂死)로 흔히 번역되는 영단어 "euthanasia"는 그리스어로 직역하면 "아름다운 죽음"이란 뜻이다. 현대의 "유타나시아"는 원어의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 불치의 중병에 걸린 등의 이유로 치료 및 생명 유지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생물에 대하여 직·간접적 방법으로 생물을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인위적인 행위를 말한다.
(참고로 웰다잉(존엄사, 尊嚴死)은 존엄하게 죽는 방법에 대한 고민으로, 고통 없이 안락하게 죽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안락사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 대한민국은 동물보호법에 따라
다음과 같은 경우 동물의 안락사가 허용된다.
그 외는 동물 학대에 해당한다.
• 동물이 질병·상해로부터 회복될 수 없거나 지속적으로 고통받으며 살아야 할 것으로 수의사가 진단한 경우
• 동물이 사람이나 다른 동물에게 질병을 옮기거나 위해를 끼칠 우려가 높은 것으로 수의사가 진단한 경우
• 기증 또는 분양이 곤란한 경우 등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이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할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