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그리고 꿈
완전히 고립되고,
모든 것을 잃었다고 느꼈던 순간
그는 마침내 사라졌다.
보험, 신용까지 사라지고 카드빚까지 남았다.
'신용을 가장 중시 여기던 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차라리 내가 사치를 부리다 진 빚이라면
덜 억울했을까
지옥 같은 날들이 사라졌다 해도
또 다른 족쇄,
빚이 기다리고 있었다.
절망감만 가득했던 어느 날,
모카의 눈빛이 눈에 들어왔다.
내 상황을 알기라도 하는 듯,
애잔한 눈으로 곁에 다가와 조용히 앉아
아무 말 없이 응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나는 모든 걸 잃은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소중한 나 자신, 가족, 그리고 모카가 여전히 내 곁에 있었으니까.
2017년 3월 9일 모카와 나는 서로의 온기로 겨울을 보냈다
폭언. 폭력. 가스라이팅. 착취라는 지옥 같은 날들은 사라졌지만
흔적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완벽하게 고립된 채
아무도 없는 공간에 혼자 있어도
수년간 들었던 폭언은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불안감이 온몸을 조이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빚은 오히려 나를 일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오직 빚을 갚고 신용을 회복하고자 하는 생각뿐이었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심리 상담 같은 건 사치였던 내게 빚이 원동력이 된 것이다.
일에만 몰두한 시간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으니까.
물론
돌이켜보면 빚이 가득한 날들도 혹독했다.
팍팍하기만 한 서울살이에
한 여름에는 에어컨 없이,
한 겨울에는 보일러도 틀지 못했다.
겨울마다 동파대비를 했음에도
몇 차례 동파를 겪기도 했다.
처음엔 아무것도 못 하고 당황하기만 하던 나는
6번의 동파를 겪고 해빙 전문가 못지않게 스스로 해결하게 되었다.
그 흔한 카페의 커피 한잔도 사치였고,
한 달에 하루 쉬는 날조차 없던 시절.
그 당시 내 소원은 소박하게도 주 5일 근무였다.
주 5일 근무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쉼 없이 달리기만 하느라
늘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고,
아프지 않은 날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침이면 퉁퉁 부은 손이 구부려지지 않아
손 마사지로 하루를 시작하며 일을 했다.
2018년 3월 언제나 나를 향하는 모카의 눈빛
아무리 힘든 날이라도 모카의 존재만으로도,
침대 안에서
서로 안고 있는 그 시간은 천국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바라던 가장 행복한 시간.
내가 아프거나 너무 지쳐 일어나지 못하는 날이면,
내 힘든 상황을 아는 듯 모카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나를 깨우지 않았다.
밥때가 한참 지나 공복에 토를 하더라도,
조용히 내 곁에 누워 기다려주었다.
내가 뒤척이면 살아 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듯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내 옆에 조용히 누웠다.
나의 고생을 아는 듯, 내가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잠자는 시간임을 알았던 영특한 아이였다.
그리고 그런 모카의 모습을 동생들도 자연스럽게 배우고 따라 했다.
내가 잠들거나 쉬고 있을 땐 모두 조용히, 조심스럽게 나를 기다려주었다.
첫째가 그렇게 순하고 착했기에, 동생들도 모두 그 마음을 그대로 배운 것이다.
2017년 8월 많고 많은 자리 중 내 머리 위에서 자는, '상전' 오레오
일만 하며 지내던 그 시절,
모카랑 제대로 놀러 가보지도 못했다.
틈날 때 겨우 하던 산책뿐이었음에도
나와 함께라면 마냥 좋아하던
모카는 구김 없이 늘 밝고 예쁜 아이였다.
이 작은 아이가 나와 함께 오롯이 지옥을 견뎌낸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어쩌면 나보다 더 단단하고 용감한 아이였던 거 같다.
내가 없는 집과 오레오를 지키며 함께하던 모카.
둘째 오레오를 들인 것은 그때도 정말 잘했구나 싶었다.
모카 없이 다시 그 시절처럼 살아내라고 한다면
나는 자신이 없다.
나 스스로도 어떻게 이겨냈는지 모르겠다.
사실 이겨냈다기보단
빚을 갚는 동안에도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여전히 고립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누군가를 만날 여유도, 마음도 없었다.
사람에 대한 환멸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동물을 좋아했던 나는 동물에게 더욱 관심이 갔다.
모카랑 오레오를 통해 배운 사랑과 위안으로 버려지거나 상처받은 동물들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어쩌면 상처투성이였던 시절의 내 모습이 투영되어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남은 삶을 동물들과 함께하겠다는 생각으로
셋째 오즈, 넷째 라테까지 차례로 입양하게 되었다.
대단한 결심보다는,
그저 추위나 배고픔, 상처받지 않도록,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함께 살고자 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면 할수록 작은 생명의 무게는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아이들이 전하는 순수한 사랑과 위안은 어느새 나를 '유난스러운 집사'로 만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 덕분에
나도 모르는 사이,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사람에 대한 환멸은 사라지고,
누구를 만나도 편하게 웃을 수 있는 내가 되었다.
그렇게 내 안에 잠자던 꿈들이
봄날의 새싹처럼 간질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