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 삶의 길 위에 꽃을 피우기 *

취미에서 공모전 도전, 그리고 입상

by 최은아 Choi ena




내가 지나온 어둠의 시간들.

아주 일부만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놀란다.

"전혀 그런 티가 안 나요"

"탓하거나 원망하지도 않고 어떻게 밝을 수 있죠?"


그럴 땐 조용히 웃으며 말한다.

정말 모카 덕분이라고.






나의 영원한 첫째, 모카





모카가 내게 없었다거나, 모든 걸 나에게 의지하며 칭얼대는 아이였다면 오히려 더 지쳐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카는 나를 안아주듯 항상 내 곁을 지켜주는 존재였다.

말은 못 하지만 말보다 더 깊은 위로를 주던 아이.



지옥 같던 시간이 지나고,

비로소 고요한 일상 속에서 느낀 평화로움.

일상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그때 깨달았다.

천성적으로 불평을 잘하지 않는 성격이라 밥투정 한 번 해본 적 없던 나지만,

돌이켜보면 ‘감사’라는 감정을 깊이 생각하며 살아본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시련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들.

부모님이 내 부모님이라는 것부터 감사했고, 우리나라에 태어난 것도 감사했다.

빚이 있음에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그저 '감사한 선물'이었다.



사람은 시련 속에서 성장하고,

소중한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고 한다.

모카라는 빛을 따라 걸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단단해지고 성장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일에 치여 지내던 어느 날,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이보다 경제가 더 나빠질 순 없겠지.”

“지금 자영업자들 다 바닥이야.”

모두가 절망 속에 있었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때 나는 음식점을 운영하던 자영업자였다.

또다시 시작된 힘겨운 날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감염과 격리가 되지 않기 위해 사람을 피하고, 영업시간을 늘리고, 조리부터 배달까지 해냈다.

면허도 없던 나는 매장 인근을 뛰어다니며 배달을 했고, 넘어져 이마가 찢어지고 다치기도 했다.

하지만 아프다는 생각보다, 지금 이 시간을 버티는 것이 더 중요했다.


빚을 갚고 다시 일어설 수만 있다면,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에겐 내가 책임져야 할

모카, 라테와 오레오, 오즈가 있었다.






모카, 오레오





라테, 오즈





모두가 피가 마르고 숨이 막히는 고통의 시절.

코로나 시국에도 힘들었지만, 사실 나에겐 이전에 내가 겪었던 지옥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의 끝, 집으로 돌아오면 반갑게 달려와 안기던 모카와 아이들이 있었다.

온몸으로 나를 반기며 안아주는 아이들 덕분에,

나는 다시 충전된 듯한 기분으로 매일, 다음 날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코로나 시국을 견딜 수 있었다.










정부의 자영업자 지원금은 가뭄에 단비 같았다.

특히 '전 국민 지원금'이 지급되었을 때, 나는 고민 끝에 한 공방의 원데이 클래스를 결제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던 나에게 선물한,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와 힐링의 시간이었다.

그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서, 나는 원데이클래스를 시작으로 3개월 정도의 수강을 더 이어갔다.




그 무렵,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시절 알게 된 지인의 끊임없는 연락이 있었다.

서양화 화가였던 지인은 나에게

" 재능이 많은데 왜 안 해?

미술대전 공모전에 꼭 도전해"

전공자도 아닌 내가 무슨 미술대전 공모전이냐고 나는 매번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틈날 때마다 나를 다그쳤고, 결국 나는 조용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공모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도전의 순간은 두려움을 동반했다.

무슨 정신으로 미술대전 공모전에 응모했는지, 지금도 떠올리면 아찔하다.

예술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바로 ‘작가노트’였다.

낯선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심사까지 한다는 사실이 큰 부담이었다.


하루 온종일 고심해도 글 한 줄이 떠오르지 않았다.

며칠을 머리를 쥐어짜며 써낸 글.

고작 10줄 남짓한 짧은 작가노트였지만,

내겐 그 어떤 글보다 어렵고 조심스러운 글이었다.

그리고 공모전은 준비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작품 제작, 서류 작성, 작품 사진 촬영까지 모두 마친 뒤 마감일에 겨우 응모를 마칠 수 있었다.



이후 심사 결과에 대한 기다림의 시간들.


심사 결과 발표일이 다가오자, 심장은 튀어나올 듯 쿵쾅 거리고, 발표 당일엔 잠을 설칠 정도로 긴장됐다.

기대 없이 준비했지만, 응모 이후에는 입선만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자라났다.


드디어 심사발표 —

내 이름이 1차 심사 입상자 명단에 올라 있었다.



쿵쾅 거리던 심장과 함께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

몇 번이고 이름을 다시 확인하고, 작품명을 대조해 보며 믿기지 않는 마음을 달랬다.

기대하지 않았던 기적 같던 순간이었다.

학생 시절도 아닌, 나이를 먹고 상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뛸 듯이 기뻤다.



그리고 최종 심사 결과는 — 동상 수상


"내가 본상을 받았다고???"

그날 나는 아이처럼 폴짝폴짝 뛰었다.

너무나 믿기지 않는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마치 오랜 시간 힘들게 버텨온 내게,

하늘이 건네는 작은 위로의 선물 같았다.


그날 이후,

고요히 잠들어 있던 내 꿈이 눈을 뜨고

내 삶의 길 위에 예술이라는 꽃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공예 아티스트 작가로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작은 생명이 건네는 따스한 온기와 조용한 위로가

나를 빛으로 이끌어주었습니다.

다시는 어둠에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주었고,

상처 속에 묻힐 뻔했던 감정과 예술성을 되살려주었습니다.


나에겐 결코 '작은 생명'이 아니었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