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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의삶을지원 Mar 27. 2023

'나는 모네를 좋아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엄마, 난 사실 모네가 좋았어, 처음부터. 

 인상주의 화가 모네. 모네의 그림을 엄마와 남동생과 상경하여 우연한 기회에 감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그전까지는 그림이 주는 울림이나 감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건조한 사람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림, 명화. 그냥 큰 여백에 의도를 알 수 없는 색이나 선을 멍하니 보는 것은 나 같은 문외한에겐 괴로운 것이었습니다. 색 곱다, 이건 희한하네... 뭘 그린 거야? 정도가 나의 감상의 전부였다 하겠습니다. 

그런 나에게 모네의 그림은 달랐습니다. 그것은 환상이었고 따스함이었고 내가 모르던 세계였습니다. 정신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어치우듯 그렇게 모네의 그림을 감상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인생사나 개인사, 화풍 등 배경 지식은 이미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 잠들어있던 취향의 톱니바퀴에 딱 들어맞았다고나 할까... 지식이 없는 저에게도 그 그림들은 좋은 그림이었던 것입니다. 엄마의 한마디를 듣기 전까지는요. 

 

 "음? 이 사람 상당히 부유했다는데? 그래선지.. 그림에 감동이 없잖아. 내 눈은 못 속이지. 난 이래서 모네가 싫어. 아니, 늘 싫었어. "

.....? 


 네, 한마디로 벙 쪘었습니다. 우리 모녀는 하나의 주제로 논쟁을 벌이는 게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사이인데도 이 차가운 감상평에는 동의도, 반대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번만큼은 난 이 그림이 좋았거든요. 

 엄마는 글을 쓰시는 지식인이시며 사회 전반적인 문제나 상식, 현상, 정치.... 하물며 연예계 전반의 사정들도 나보다 밝은 분이시죠. 난 또 습관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가...? 이 그림이 그다지도 사치에 찌들어있나...? 정말 이 그림엔 감동은 없는 건가....? ' 생각의 끝은 결국, '난 그림 보는 눈이 없어.'였습니다. 


그 후 약 10여 년 뒤인 최근에 엄마와 집에서 티브이를 보는데 모네의 작품이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게 뭔지 아십니까...? 엄마는 "딴 데 틀어라, 난 모네가 싫어. 정말 싫어. 예술이란 배고프고 처절해야 예술이지. 이 사람 그림에는 그게 없다. 그게 불쾌해 난. 너도 그렇댔지...?"

10년 뒤에도 저희 엄마는 모네를 힐난했습니다. 나는 최근 들어 제 두 아이와 명작을 보고 화가가 꿈인 막내를 위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 자료를 수집하다 이대로는 안되지 싶어 그림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10여 년 만에 조우한 모네의 그림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변함없는 색채도, 빛도... 그 빛이 나를 관통하는 것도 모두 그대로더라고요. 제 아이들도 모두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고 난 이번에는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아니 엄마, 난 모네가 처음부터 좋았어요." 라구요.  

 엄마는 늘 옳은 분이지만 이번은 말하고 싶어요, 나는 모네가 좋아요. 이건 취향이 다른 거지, 틀린 건 아니죠? 라구요. 

 "하지만 함께 전시를 봤을 때 너도 그림은 별로라고...."

 "아뇨. 그림이 어떻다고는 말씀 못 드렸어요, 엄마가 너무 별로라고... 근데 나는 좋았어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음.. 엄마는 조금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당연합니다. 우리 집에서 엄마는 정서적으로 지주였고 우리들의 길잡이셨죠. 근면성실한 아빠는 우리  가정 내에서는 어떠한 기둥 역할도 되어 주시지 않았습니다. 어릴 땐 이기적인 분이라 생각하고 멀어지기 일쑤였죠. 그러나 돌이켜보면 단지, 일찍이 본인 삶에 더 집중하고자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다른 분이셨습니다. 엄마는 충족되지 않는 정서적 만족을 나와 동생에게서 찾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남매는 꼭꼭 다지고 이겨서 입에 넣어주는 엄마 필터가 씌워진 먹잇감으로만 성실히 배를 채워왔던 것입니다. 예술마저도...! 생각보다도 그것은 오히려 쉬운 일입니다. 논쟁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결국은 포기하게 하더라고요. 

 문제는, 제 아이가 태어나고부터입니다. 사는 것에 지친 내가 엄마 말에 귀 기울이기를 소홀히 하자, 이번엔 그 논쟁은 제 아이들에게로 번져갔습니다. 엄마가 내 아이들에게도 가르침을 주는 것은 감사하지만 난 이미 그것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평생을 겪었기에 내 아이들에게는 나 스스로 하는 생각과 결정의 기쁨을 알게 하고 싶었습니다. 자기 주도식 삶, 요즘 트렌드와도 맞고요.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내 의견을 관철시키느라 아이들 입을 막는다는 건 아이에게 어떤 의미인지, 아니 더 나아가 아이가 어떤 부류의 사람으로 살지를 결정짓는 사실은 엄청난 일이란 것을 깨달았다고 할까요. 

자식은 내 소유가 아니며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라 생각하고 싶었는데 아이가 클수록, 또 아이가 제 생각을 잘 따라와 줄수록 욕심도 눈덩이처럼 커져 더 나은 방향으로의 훈육이라는 허울로 또 다른 나를 만들어 세우고 내가 못 다했던 것들을 자식으로 이루고자 함. 이건 이미 너무 많이 반복되는 부모 자식 간의 슬픈 비극이잖아요. 잘되도 안돼도 우리 아이는 결국은 어른이 될 겁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소리 내어 말해봅니다.

 "엄마, 사실은 제가 모네를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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