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선생님
경숙이는 학창 시절 무용을 전공했었다. 군인과 결혼을 하고 난 후, 전공을 접어야 했던 경숙이는 요가 자격증을 땄다. 결혼 수 지금까지 남편 근무처 주변 문화센터에서 요가를 가르치고 있다.
지수를 만난 건 대전에 있을 때였다. 대전에는 군아파트 단지의 규모가 큰 곳이 있다. 그곳에서 군 가족들을 대상으로 요가를 가르치고 있었다. 어느 날 정말 몸이 뻣뻣한 회원이 들어왔다. 키가 크고 부끄러움이 많은 회원이었다. 그 회원이 바로 지수.
지수는 말수가 없어 좀처럼 친해지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지수와 급 친하게 된 계기가 생겼다. 요가를 하다 보면 어깨서기 자세가 있다. 바닥에 누워 어깨로 허리 골반 다리를 지탱해야 하는 어려운 자세이다. 발끝이 바닥과 수직으로 세워져 있어야 하기에 회원들의 자세가 틀어지면 다가가서 다리를 잡아 주곤 한다. 지수는 요가를 시작한 지 2개월이 넘어서야 어깨서기 자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지수의 다리를 잡아주는데 '뿌룩뿌룩~'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경숙이는 키가 작아서 어깨서기를 한 지수의 골반 높이에 얼굴이 위치했다. 깜짝 놀란 경숙이는 "지수씨! 어머머머! 뭐야~ 내 얼굴에 방귀 뀐 거야?" 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지수는 당황한 빨간 얼굴로 "선생님~ 저 애를 셋 낳아서 괄약근 조절이 어려워요. 요가만 하면 똥꼬가 말을 안 들어요." 라며 부끄러워 웃는 게 아닌가? 경숙이는 지수의 솔직함에 반해 "이제 지수씨 똥꼬 내가 책임질게! 걱정 말고 어깨서기 해!" 라면 다리를 꽉 잡아 주었다. 그 사건 이후로 지수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지수는 요가 시간마다 뿌룩뿌룩 뿌르르르 방귀를 뀌었고, 다른 회원들도 처음에는 키득키득 웃다가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당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경숙이는 군아파트 문화센터에서 오전 요가를 마치면 점심에는 노인정으로 갔다. 재능기부로 노인정 할머니들과 할아버지와 함께 노인요가를 하며 봉사활동을 했다. 요가가 끝나면 같이 음식을 만들어서 점심식사를 하고, 노인정 청소도 해드렸다. 시간이 날 때면 할머니들과 민화투도 쳤다. 오후 3시가 되면 군가족 오후 요가 클래스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일정으로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아이가 세 명인 지수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고 했다. 경숙이는 지수에게 "지수야, 매주 목요일에 시간이 괜찮으면 노인정에 함께 봉사하러 가지 않을래? 나 혼자 넓은 노인정을 청소하는 게 힘이 들더라고. 그리고 할머니들이 해주시는 맛있는 점심 같이 먹자." 지수는 일주일에 한 번은 시간이 괜찮다며 흔쾌히 승낙을 했다. 다른 요가회원 3명도 함께 한다고 해서 매주 목요일은 노인정 잔칫날이 되곤 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젊은 새댁들이 오니 아주 좋아하셨다.
경숙이는 솔직하고, 따뜻함이 가득한 지수가 유독 눈에 띄었다. 할머니들 안마도 해드리고, 귀지 청소도 해주는 기특한 아이였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노인정에 가지고 와서 함께 나누는 마음이 예쁜 아이였다. 그리고 운전이 가능했던 지수는 할머니들을 모시고 벚꽃 구경도 가고, 가을이면 단풍놀이도 함께 갔다. 할머니들과의 유대감도 점점 깊어져 지수가 이사를 떠날 때 서로 아쉬워하며 눈물을 훔쳤었다.
지수는 이사를 갈 때마다 경숙이에게 안부전화를 했다. 2년에 한 번씩은 늘 통화를 했었고, 남편 퇴직 후 시골에 정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지수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경숙이는 문자를 받고 스팸으로 오해를 했다. 지수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지수의 남편이 전화를 받았다. 지수는 일 년 정도 투병 생활을 했고, 지수의 뜻에 따라 장례식을 진행하기로 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지수 남편에게 장례식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경숙이는 지수가 보낸 편지를 다시 펴서 천천히 읽었다.
선생님, 지수예요.
많이 놀라셨죠?
지금은 몸이 점점 말이 듣질 않아요.
그래서 저의 삶을 마무리 중입니다.
선생님께 따로 부탁드릴 이야기가 있어 편지를 한 장 더 써요.
장례식을 1박 2일로 진행을 하려고 해요.
아침 명상 후에, 제 친구들과 함께 요가를 해주세요.
저랑 했었던 요가를요.
선생님과 요가를 하고, 노인정에서 봉사했을 때가 정말 행복했어요.
선생님 딸뻘인 저에게 늘 말씀하셨죠?
"지수야, 넌 내 친구야. 나이가 내가 한참 많지만, 우리는 친구야 알겠지? 그리고 노인정 할머니들과도 친구 해! 할머니들 내 친구야. 그러니까 너랑도 친구지~"
친구는 나이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선생님께서 알려주셨어요.
그 이후로 저는 많은 분들과 친구가 되었답니다.
고맙습니다.
집에 요가 매트가 5개 정도 있어요.
선생님 댁에 매트가 있으면 가지고 와주세요.
선생님! 선생님은 저의 최고의 친구입니다. 사랑합니다.
경숙이는 두 번째 편지를 읽고 나자 목구멍이 꽉 막혀 꺼이꺼이 슬픔을 토해내야 했다. 어느 정도 눈물이 잦아들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집에 있는 요가 매트를 10개 챙기고, 가장 좋아하는 책도 꺼내두었다. 지수에게 가기 전날 경숙이는 이별편지를 쓸 수 있었다. 지수와의 추억들은 정성스럽게 써내려 가면서 눈물도 흘리고, 웃기도 했다. 다 쓴 편지는 책에 고이 끼워두고 잠자리로 향한다. 잠이 올 것 같기 않았지만 경숙이는 침대에 눕자마자 스르르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