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반쪽이
나와 한평생 살아주어 고마워
상철이와 지수는 대학교 캠퍼스커플 CC였다. 모태솔로였던 둘은 대학교 2학년 때 만나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미숙한 서로의 행동에 섭섭함을 느껴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를 반복하다 8여 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상철이는 직업을 군인으로 선택했고, 2년마다 한 번씩 이사를 하며 지수와 본인을 닮은 아이 셋을 낳아 기르며 성실하게 살아왔다. 8년 동안 연애를 해서 서로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는 동안 지수와 다툴 일이 많아졌고, 아이들이 한 명씩 늘어남에 따라 지수의 짜증과 불만은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부대에서 힘들게 일하고 들어오면 집에 있는 호랑이가 매번 포효를 했다. 그리고 회식자리를 다녀올 때면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지수의 우렁찬 목소리가 귓가에서 빙빙 맴돌았다.
"야! 너만 술 마실 줄 아니? 애는 나 혼자 낳고 키우는 거야?"
지수는 매번 억울하다며 울었다. 같은 학교를 나오고, 오히려 상철이보다 공부도 더 많이 했는데, 왜 내가 너를 뒷바라지해야 하냐며 억울하다고 울었다. 상철이는 그런 지수를 볼 때마다 답답하고 싫었다. 다른 군인 가족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는데, 우리 집만 이렇게 지지고 볶고 싸우는 것 같아 답답했다. 그래도 상철이는 세 딸들과의 교감도 잘되고, 아이들이 이사를 다닐 때마다 적응도 잘해주어서 고마운 마음이 컸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만 봐도 뿌듯하고 기뻤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하자 지수와의 관계는 점점 편안해졌다. 상철이도 군대에서 직급도 높아졌고, 아이들의 독립은 경제적인 안정도 가져왔다. 지수가 그토록 바라던 심리학 공부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한결 마음이 놓였다. 상철이와 지수는 은퇴 후의 삶에 대해 평소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기는 꼭 나이 들어서 시골집에서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지수다. 다행히 퇴직 2년 전에 시골집을 하나 사두었다. 지수가 원했던 충주호 근처에 작은 시골집. 둘은 주말마다 시골집으로 가서 땅을 정리하고 집을 하나하나 고치기 시작했다. 300평의 땅에 텃밭과 둘만의 사랑채, 손님이 머무르는 쉼터, 공용주방을 크게 마련했다. 남은 인생을 지낼 곳이라 더욱 정성을 들여 함께 구슬땀을 흘렸다.
상철이가 은퇴하던 날. 상철이와 지수는 배낭을 둘러메고, 공항으로 향했다. 상철이는 30년을 넘게 군인 가족으로 힘들게 살아온 지수를 위해 꼭 해주고 싶은 게 있었다. 그리고 본인을 위해서도. 1년간의 세계여행. 그동안 영어는 물론 여러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는데 많은 노력을 했던 둘이다. 상철이의 주종목은 영어와 프랑스어다. 지수는 독일어와 스페인어. 세계여행은 스페인의 순례길을 시작으로 하여 발길 닿는 곳으로 가서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머무르며 지냈다. 1년의 세월은 손쌀같이 지나갔고, 한층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시골집으로 돌아온 상철이와 지수는 여행의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지수가 글을 쓰고, 상철이는 사진과 일러스트 손그림으로 그때의 느낌을 자아냈다. 몸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할 때부터 쉼이 필요한 이들이 시골집으로 오기 시작했다. 상철이와 지수는 시골집을 둘만의 노년의 공간으로도 마련했지만, 일상에서 쉼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쉼터를 마련해 놓았다. 손님들과 함께 텃밭을 가꾸고, 지수가 하는 요리도 함께하며 일상을 편안하게 지냈다. 시골집에서 지내기 시작한 지 2년이 되어갈 때쯤 갑자기 지수의 몸에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일년 동안 병과 함께 하더니 지수는 바람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지수는 자신의 병을 알자마자 상철이에게 작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자신의 장례식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자기야, 내 마지막 부탁이야. 꼭 들어줬으면 해. 그리고 나와 한평생 살아주어 고마워."
상철이는 지수가 없는 삶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기에 상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세 딸들과 사위들, 손자 손녀들이 그 빈자리를 함께 해줘서 지수가 원했던 방식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가족들과 지수를 그리워하며 한 달을 보냈다. 우리는 서로 울고 웃으며 지수를 떠나보냈고, 그녀의 바람대로 남은 인생을 소중히 대하기로 서로 약속을 했다.
상철이는 지수가 죽음을 맞이한 직후부터 지수가 미리 작성해 둔 리스트에 따라 실행에 옮겼다. 제일 먼저 지수의 장기들을 기증했다. 평소 채식위주의 식사를 했던 지수의 장기는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기증 후 시신은 바로 화장을 했고, 화장을 한 지수의 가루 단지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상철이가 현충원에 묻히는 날 함께 묻히기 위해. 상철이는 한 달 동안 지수를 떠나보내는 애도를 했다. 앞마당에 앉아 바람이 불 때면 지수가 옆에 있다고 생각을 하며 지수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많은 말들을 토해냈다. 말의 말미에는 천 개의 바람을 불러주었다. 그리고는 눈물을 훔치는 상철이.
오늘은 지수가 친구들에게 쓴 편지를 우편과 메시지, 이메일로 전송을 했다. 몇몇의 외국친구들은 연락처를 알기가 쉽지 않았지만, 세계여행을 할 때 만났던 친구들에게 부탁해 다행히 모두에게 지수의 편지를 보낼 수 있었다.
상철이는 장례식 준비를 위해 몸과 마음이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지수의 독특함을 알고, 그것이 좋아 결혼까지 했지만, 마지막까지 이렇게 특이하게 준비할 줄은 몰랐다. 상철이는 지수의 이런 엉뚱한 매력에 미소가 지어진다.
'지수야, 넌 정말 특이해. 나의 아내가 되어 내 곁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가서 고마워. 지수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