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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소에서 10만 원 쓰기

생활에 자잘한 게 참 많이 필요하구나

by 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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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냈고 이삿짐도 들여놨으니 본격적으로 ‘새 집을 내 집답게’ 보강할 단계가 왔다. 아니, 그런 줄 알았는데 사실 그것보다 먼저 ‘사람이 살 만한 집답게’ 만드는 게 우선이었다. 청소를 하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에서도 엄마와 나는 이사한 날 저녁에 뜻을 모았다. 다이소에 가자.


그 시점에 우리 집에는 식탁이 없고 주방 수납공간이 부족해 밥솥과 전자레인지가 집안을 떠돌았으며, 우리는 식탁의자가 없어 작은 상을 편 뒤 엉덩이에는 담요를 깔고 앉아 밥을 먹는 처지였다. 어딘가에 들어가지 못한 물건들이 바구니에 쌓인 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반면에 없는 게 너무 많았다. 사람이 살려면 필요 없는 건 비워내고 그만큼 필요한 걸 사서 채워야 한다는 리빙포인트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다이소에서 사야 할 건 다양했다. 쓰레기통, 반찬통, 양념통, 수저통, 물통 등 갖은 종류의 통과 쟁반, 도마, 티스푼처럼 은근히 집안 필수품인 것들, 공간 활용을 위한 고리와 후크, 싱크대 앞에 깔아 두는 발매트와 벽걸이 달력을 위한 꼭꼬핀 같은 사소한 것들까지. 그런데 엄마와 나는 그 전날에 마트에서 15만 원어치를 쓴 상태였다. 간장, 고추장, 후추 등등 주방에 기본적으로 있어야 할 게 얼마나 많은지! 이제 보니 주방은 밥이 아니라 돈을 먹는 곳인가 보다.


집 가까이에 위치한 다이소는 지하 1층을 다 쓰고 있으면서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난감한 곳이었다. 그런대로 넓어 보이면서도 없는 건 많아서 분리수거용 가방이라든가 욕실용 선반, 발수건을 걸어놓을 만한 접착력 좋은 고리, 우리가 찾는 크기의 수납함 등 꽤 여러 가지를 사지 못했다. 대신 리스트에 적지는 않았는데 매장에 방문해 보니 이걸 사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들도 꽤 넣었다. 짐을 옮기기 위해 싸맸던 테이프를 뜯으며 너덜너덜해진 요가 매트나 십자드라이버 같은 물건들이 그랬다.


맹세컨대 우리는 낭비하지 않았다. 그러나 매장용 바구니 두 개가 꽉 찼고, 나는 계산대 앞에서 아무래도 10만 원은 나올 것 같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했다. 최종적으로 내가 결제한 금액은 94000원이었다. 맙소사, 다이소에서 10만 원을 쓰는 업적을 뜻하지 못한 순간에 달성해 버렸다.


문제는 다이소에서 살 수 없는 값나가는 물건들도 꽤 많다는 점이었다. 세탁기 옆에 놓을 만한 날씬한 카트라든가 식기건조대, 빨래건조대, 행거, 아무래도 하나는 있어야 할 것 같은 책장 등등. 12월에는 두 명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예산을 얼추 가늠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안 될 듯했다. 이후 우리는 이마트에서 한 번 더 거금을 썼고 규모가 더 큰 다이소에 또 갔다.


만 19세가 지났다고 곧바로 진정한 성인이 되지는 않는 것처럼, 어른 노릇을 서툴게나마 하려고 해도 일단 아무것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빈 터를 적당히 가꾸는 작업이 필요한 모양이다. 새로운 집과 삶이여, 이제부터 함께 친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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