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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첫 가구 조립

그리고 고통스러운 칼집함 달기...

by 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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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나는 인테리어와 관련된 활동을 해 본 적이 없다. 아빠의 직업이 해당 분야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못을 박는다거나 뭔가를 설치하고 조립할 이유가 없었다. 아빠는 목공소에 가서 필요한 가구를 만들어올 때도 있었고, 블라인드를 달아주었고, 언니가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가면서 내부 수리가 필요했을 때는 그 모든 걸 총괄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새 집에 아빠는 없고 우리에게는 2가지 과제가 남겨졌다. 싱크대 서랍에 칼집함을 달 것, 그리고 이케아에서 산 식탁 의자 2개를 조립할 것.


나는 저 두 가지 일거리를 완수하는 게 그렇게 힘들 줄 몰랐다.






먼저 칼집함 얘기를 해보자. 이미 몇 번 말한 것 같지만 어떻게 싱크대 서랍에 칼집함이 안 달려 있을 수가 있나?! 이전 세입자는 이런 걸 하자로 접수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인가? 그럼 대체 식칼과 과도는 어디에다 뒀다는 거지? 살면서 요리를 단 한 번도 안 했을 리는 없지 않은가?! 아마 새 집에 와서 가장 충격적인 일 최상위권에 꼽히는 사항이었고 그만큼 빠른 조치가 필요했다. 우리는 다이소에서 칼집함과 1000원짜리 드라이버를 샀다.


싸구려답게 끝부분의 자성이 너무 약해서 끝없이 나사를 떨구고 마는 드라이버로 칼집함을 다는 것은 정말로 고생스러운 일이었다. 작은 피스못을 망치로 꽝꽝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드라이버를 돌리는 힘만으로 서랍에 고정해야 한다는 건데, 싱크대 서랍이 나무판 몇 개를 합쳐놓은 두께도 아니었기 때문에 드라이버를 쥔 오른손이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또 서랍 하단에 칼집함을 달아야 하니 아래쪽 귀퉁이를 공략할 때는 거의 묘기를 부리듯 몸을 접어야 했다. 사람 살려! 몸부림을 치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엄마가 저녁을 다 만든 뒤 마무리를 해주겠다고 나섰지만 웬걸, 엄마는 나보다 더 헤맸다. 드라이버 끄트머리에서 피스못이 자꾸만 떨어지니 답답하신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다. 내가 끝을 보겠다.


피스못은 조금씩 삐뚤어졌지만 고비를 넘기니 그런대로 잘 들어갔다. 마지막 못은 한 번의 시도만으로 박혔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씨름한 결과 칼집함을 다는 데 성공했다! 이후 엄마는 언니와 통화할 때 내가 집을 나오고 책임감이 생긴 모양인지 칼집함을 열심히 달더라고 전했다. 나는 삐뚤어진 못 때문에 혹시나 칼집함이 떨어지면서 사고가 나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는데 아직까지 그런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식탁 의자 2개를 완성하는 데에는 1박 2일이 걸렸다.


나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서, 혹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업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조립이 필요한 식탁 의자를 산 건 아니었다. 착석하는 부분이 푹신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의자 종류 자체가 많지 않았고 세라믹이나 플라스틱 소재는 거슬리는 소음을 내기 때문에 제외했다. 집 내부와 색상 톤을 맞추기 위해 밝은 색으로 색상까지 한정하고 나니 남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고, 우리는 이케아의 '에케달렌'이라는 식탁 의자를 구입하게 되었다.


chair.png 에케달렌 의자는 이렇게 생겼다


일주일을 기다린 식탁 의자는 늦은 밤에 왔다. 드디어 식탁 앞에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음에 기뻐하면서 나는 박스를 풀어보았다. 처음으로 이케아에서 물건을 사 본 것이어서 설명서에 아무런 글씨가 쓰여 있지 않음에 약간 당황했다. 앱에서 볼 수 있는 설명서는 출력된 형태로 박스 안에 들어 있는 것과 같았고 조립 시연 영상은 없었다. 참고로 나는 공간적이고 입체적인 무언가를 상상하고 구현하는 데에 상당한 약점이 있는 사람이다. (초등학교 때 도형의 전개도를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여 해체했던 과자 상자가 수십 개는 될 것이다) 영상이나 설명문 없이 그림만으로 내가 의자를 완성할 수 있을지 걱정하면서 나는 허리를 굽혔다.


준비물 중 하나인 일자 드라이버는 며칠 전 나를 상당히 애먹였던 십자드라이버와 함께 미리 사다 놓은 상태였다. 보아하니 일자 드라이버로 부품을 적당한 곳에 위치하게 한 다음 제공된 육각렌치(구글에서 검색하기 전까지 이 도구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로 네 군데를 조여주면 되는 듯했다. 이 과정은 그야말로 힘을 쓰며 낑낑대는 행위를 요구했다. 렌치를 힘겹게 돌릴수록 손이 너무 아파서 집에 있는 외출용 보온 장갑을 껴야 했다. 집에는 목장갑도 몇 개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플라스틱 장치를 프레임 사이에 고정하여 마무리하는 것 같았는데 이게 최고로 곤혹스러웠다. 그림은 너무 간단했고 딸깍 소리가 나면 된다고 했다. 플라스틱은 늘어나지 않고, 부품이 들어갈 만한 틈새는 구조 상 떨어져 있는데 대체 어떻게 딸깍 고정한단 말인가? 수십 분을 버둥거리다 유튜브 검색을 해보았으나 부품이 리뉴얼되었는지 내가 필요한 단계를 보여주는 영상은 없었다. 이 단계에서는 엄마도 나와 함께 아등바등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딸깍! 소리가 났다. 어? 하지만 나는 내가 어떻게 그 행동을 했는지 몰랐다. 조금 지나서 엄마도 딸깍! 에 성공했다. 그러나 엄마도 본인이 어떻게 그 일을 성공했는지 의식하지 못했다. 우리는 박장대소했다. 의자 1개를 완성하는 동안 내가 세 번 딸깍 소리를 자아냈는데 도무지 그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림도 그렇고 플라스틱 장치를 밑으로 밀어내는 것 같은데, 의식적으로 힘을 쓰면 안 되다가 불현듯 얻어걸리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렇게 환장할 것 같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내 손은 쓰라릴 것처럼 빨개졌다. 아무래도 힘이 다 빠진 모양이었다. 내일 기력이 충전되면 마저 완성하도록 하자.. 흑흑. 다음날이 주말이어서 다행이었다.


딸깍! 되어야 하는 부분은 세 군데나 남아 있었다. 엄마와 나는 풀썩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잠옷 차림으로 방에서 나와 엎어져 있는 미완성의 식탁 의자에 매달렸다. 내가 잠들어 있던 동안 뇌가 모종의 정리를 실행한 모양이었다. 어젯밤 고생한 게 무안할 정도로 나는 몇 분만에 딸깍 3 연타를 만들어냈다. 장치를 밀었던지 당겼던지, 아무튼 그림에서 설명한 방법과 본질적으로는 같았다. 하지만 그걸 더 자세하게 설명해 보라고 하면 못하겠다. 이것이 수면의 불가사의한 힘인가 싶다.


이처럼 늦은 밤부터 다음날 아침에 걸쳐 완성한 식탁 의자는 현재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구매한 식탁을 끝까지 확장하면 의자 두 개가 그 사이로 쏙 들어가는데, 치수를 치밀하게 재지 않았던 우리 입장에서는 기막히게 반가운 우연이다. 의자 커버 세탁이 가능하다고 해서 구입한 까닭도 있었으나 그 커버를 벗기는 대신 식탁 의자 위에 커버 혹은 쿠션을 깔고 그걸 세탁하면서 사용할 예정이다. 또 그 '딸깍'을 해낼 자신이 없는 탓이다.


이 두 가지 경험에 관한 감회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무척 뿌듯하지만 반복하고 싶지는 않은 일이다. 앞으로 가구가 또 필요하면 설치 기사가 직접 방문하는 현대리바트 제품을 사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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