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중에 TV는 사야겠지?
스마트폰으로 영상물을 시청하는 사람들이 많고, 유튜브 같은 다른 매체들이 인기를 끌어서인지 요새는 TV가 없는 집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도 공동주택 관리비에는 TV 수신료가 무조건 포함되어 있어 그걸 해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인터넷 게시글도 많이 봤다. 기존에 있던 TV를 가져가지도, 새로 구입하지도 않았던 나에게도 필요한 지식일 것 같아 머릿속에 잘 새겨두고 있었는데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가니 다행히 TV 수신 해지 신청서가 비치되어 있었다.
집을 장만하고 꾸미면서 잔고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데다 TV 배치 및 가구 구조를 제대로 정하지 못해서 조만간 그 서류를 작성해야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한 발 빨랐다. 이것저것 문의하려고 관리사무소에 갔다가 겸사겸사 신청서를 냈다고 했다. 정말로 집에 TV가 없는지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왔었다고 하는데, TV가 없으면 심심하지 않으시겠냐고 한 마디 덧붙이고 간 모양이었다.
다행히 나는 엄마를 위해 다른 대책을 마련해 놓은 상태였다. 바로 넷플릭스다!
음악 감상용으로 결제하고 있는 유튜브 프리미엄은 한참 전부터 엄마도 이용할 수 있게 해주고 있었으나 넷플릭스 계정을 엄마와 함께 쓰기로 결심한 건 최근 일이었다. 기다리던 작품이 올라와서 구독을 재시작해야 하기도 했고, 엄마가 혼자 가만히 있으니 조금 울적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던 게 가장 마음에 걸렸다. 아빠와는 언젠가부터 같이 있어도 대화를 많이 하지 않은 엄마였지만 30년 넘게 같이 살던 사람이 한순간에 없어지니 확실히 헛헛함을 느끼는 듯했다. 그래서 엄마의 핸드폰에 넷플릭스를 설치하고 아이디를 알려주었다. 유튜브 메인과 피드가 익숙하기 때문인지 엄마는 넷플릭스 이용을 크게 어려워하지 않았다. 며칠 뒤에는 성인 인증도 해주었다. 다른 게 아니라 엄마가 욕쟁이 할머니가 주인공인 영화를 보고 싶어 해서였다 :D
지금까지 엄마는 넷플릭스를 통해 원래 좋아했던 예능 프로그램과 한국 영화 몇 편을 보셨다. 내 예상보다는 이용 빈도가 높아서 다행이었다. 주로 중년여성 배우가 주인공인 작품들을 감상하신 것 같은데, 주말에 종종 엄마가 영화를 보면서 웃는 소리를 들으면 뭔가 기분이 좋아졌다. 전에 보고 싶었던 영화를 시청하셨다고 하는 걸 보면 엄마도 그런 데에 관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딸은 일편단심 할리우드 취향이라 엄마와 영화관을 간 적이 거의 없다, 에구구.) 사실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예능을 더 좋아하는 엄마에겐 티빙이나 웨이브 같은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가 더 적합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미안, 내가 볼 거 다 보면 티빙 결제할게. 나도 <텐트 밖은 유럽>은 보고 싶어서!
그러다 정말 뜻밖에도 윤 모씨의 셀프 쿠데타 사태 때문에 TV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넷플릭스는 당연히 뉴스를 시청할 수 있는 서비스가 아니며 유튜브 라이브도 TV 채널을 곧장 돌리는 것만큼 간편하지는 않았다. MBC 뉴스 채널 하나만 해도 라이브 스트림이 몇 개씩 되니 헷갈리기도 하고, 화면을 반복 송출하는 스트림도 있었다. 이런 계기로 TV 구입을 고려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일단 내년에 55인치 위주로 제품을 더 알아보기로 했다.
역시 집에 TV 한 대는 있어야 하나 보다. 가장이 된 딸이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