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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간소음을 피해 엄마와 한 방에서 자기

부모는 자녀에게 먼저 도움을 청하지 않으니까

by 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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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 내 방과 침대를 갖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이었을 것 같다. 언니가 대학교 기숙사에 가게 되면서 방 하나가 남았을 시기다. 그 이후부터는 여행 가서 호텔 방을 공유하지 않는 이상 엄마와 내가 같이 잔 경우는 없었다. 우리는 모두 잠드는 걸 어려워하고 신경이 예민하기에 자는 공간을 공유하는 건 양쪽에게 모두 손해였다.


그런데 이사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난 이 시점, 우리는 두 차례 한 방에서 잤다.


아직 식탁도 구비되지 않았던 어느 밤이었다. 엄마와 나는 벽을 통해 들려오는 옆집의 왁자지껄한 목소리에 놀랐다. 이삿날에 우연히 옆집에 젊은 남자가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아무래도 그 양반이 친구들을 초대한 모양이었다. 웃음소리며 크게 떠드는 소리가 어찌나 선명하게 들리는지 문장을 따라 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이전에 살던 곳에서 옆집이 심하게 싸우는 소리, 단 한 번도 나아지지 않던 윗집의 발망치 소리와 온갖 부주의한 쿵쾅거림에 고통을 겪은 적은 있으나 듣는 사람도 민망해지는 선명도의 대화 소리는 처음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면역 체계가 붕괴될 정도의 끔찍한 불면증을 겪었던 나는 잠을 자지 못하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안다. 한편 아빠와 살면서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로 엄마가 겪고 있는 힘겨움 중에는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먼저 엄마에게 잠을 못 잘 것 같으면 내 방으로 오라고 했다.


엄마도 사실 내가 본인만큼 수면 환경에 예민하고 한 번 잠들지 못하면 영원히 밤을 새운다는 걸 안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 보더니 내 방에서 자겠다고 했다.


우리는 먼저 내 방바닥에 패드를 깐 다음 뜨거운 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온수매트와 이불을 옮겼다. 의자를 밖으로 치우고 엄마의 베개가 놓이는 윗부분을 책상 밑까지 살짝 끌어올리자 방문이 넉넉하게 닫혔다. 내가 사용하는 책상은 일반 책상보다 넓고 높이도 낮지 않아서 엄마가 몸을 좀 움직인다고 닿을 것 같진 않았다. 이후 문을 닫자 상당한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내 방이 소음의 근원지와 훨씬 먼 덕택이었다.


그날 엄마와 나는 한 방에서 잘 잤다. 금요일 밤이나 주말마다 이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후 한 번을 제외하면 옆집은 그런대로 조용했다. 엄마 말로는 음악 소리나 TV 소리가 종종 들린다는데 사람 목소리보다는 작게 들리나 보다. 옆집도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집들이 기간을 가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건대, 아마 엄마는 내가 먼저 제안하지 않았다면 내 방으로 옮겨 잘 수 없겠느냐고 물어보지 않았을 것 같다. 대부분 부모는 자녀에게 먼저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자신이 뭔가를 더 하려고 하는 게 부모다. 부모는 자녀에게 감추는 것도 많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뒤늦게 말했던,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벌어진 일들에 관해 내가 알지 못했으며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게 여전히 미안하다. 또 그렇기에 내가 앞서서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이 비록 벽간소음을 피해 같이 자겠냐는 시시한 주제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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