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밥 한 숟가락에 조린 무 한 점을 얹고 그 위에 갈치를 얹는다. 햅쌀밥과 가을무와 갈치 속살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삼단 조각케이크를 나는 한입에 넣는다. 따로 먹는 것과 같이 먹는 건 전혀 다른 맛이다. 정말 이렇게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밥과 무와 갈치가 어울려 내는 이 끝없이 달고 달고 다디단 가을의 무지개를. 마지막으로 게다리를 넣어 구수한 단맛이 도는 무된장국을 한술 떠먹는다. 그러면 내 혀는 단풍잎처럼 겸허한 행복으로 물든다.
권여선 [술꾼들의 모국어]
'한국인의 밥상'은 뭐니뭐니 해도 프리젠터가 최고였다. 최불암이 그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바닷가에서 막 구워낸 생선살을 받아먹거나, 엄청나게 꾸몄는데도 촌스럽고 그래서 정이 가는 할매들과 무쇠솥 앞에서 이야기를 주고 받지 않았더라면 그 프로그램은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수첩 하나 들고 돌아다니는 최불암을 문화인류학자 보듯 보았다. 그 프로그램은 흔한 시사교양 방송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기술지였다.
스핀오프 프로그램을 편성할 법도 하다. 왜 밥상만 있단 말인가. 우리에게는 유구한 술상의 전통이 있다.
어떤 음식도 술과 함께 내기만 하면 안주가 되는 법이다. 풋고추에 막된장이라 해도, 곁에 막걸리 주전자가 놓인다면 꽤 아름다운 여름 술상 아닌가.
한국인의 술상을 정말로 제작한다면, 프리젠터는 권여선이 하면 좋겠다. 권여선만큼 아름답게 안주와 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을 나는 알지 못한다. 심지어 여러 안주는 물론 갖은 해장 음식을 직접 만들어먹을 줄도 아니까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KBS 피디들은 이 책을 사서 읽으라. 그리고 기획안을 쓰라. 함께 물들자 단풍잎처럼 겸허한 행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