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던 백수 Nov 12. 2024

[속보]런던 집구하기 3차전 발발

현재 머무는 집을 구하는 지난한 과정은 브런치에도 쓴 적이 있다. 새삼 다시 간추리지는 않겠다.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부터 글 몇 개를 따라가보시면 된다. https://brunch.co.kr/@ea77230899864d4/18 


1월 19일에 이 집에 왔다. 캔싱턴 복판, 사이언스 뮤지엄과 자연사박물관 빅토리아알버트뮤지엄 로열알버트홀 해러즈백화점 캔싱턴가든스와 하이드파크가 지척이다. 위치는 뭐 그냥 최고. 매일 하이드파크 산책을 하고, 여름 내내 BBC 프롬스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아이와 손 잡고 걸어서 10분이면 등하교를 한다. 나쁘지만은 않은 집이다. 그런 집에서 나가는 걸 고려하고 있다.


원베드룸 그라운드 플로어 플랏. 월 2,850파운드. 계약 기간은 2년. 1년째에 계약 종료를 선언할 수 있다. 계약을 마치려면 두 달 전에 통보하면 된다. 2년 계약을 했으니 그냥 주저앉아 있으면 그만인데 왜 나가려고 하느냐.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엄마랑 딸만 지내야 한다

나는 1월에 복직을 해야 하니 귀국할 수밖에 없다. 나도 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6학년 아이는 필사적으로 세컨더리 스쿨 입시에 매달리는 중이다. 일단 아이가 6학년은 마치는 게 좋다 싶다. 1년 경험만으로도 엄청나게 성장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아깝긴 하니까. 그래 내년 여름까지 몇 달이라도 더 있으렴. 그리고 혹시라도 알 게 뭔가. 아이가 그냥 입학 허가만 받는 게 아니라 엄청난 조건의 장학금이라도 따낼지.


내가 귀국한 다음에는 엄마와 딸, 두 사람만 지내게 된다. 사우스캔싱턴은 대사관 밀집 지역이기도 해서 매우 안전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라운드 플로어는 상대적으로 보안에 취약하다.


메인 출입문 바로 앞집이라 주민들이 드나들 때마다 문이 쿵쿵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그 무겁고도 큰, 층고가 3미터가 넘는 그라운드 플로어에 맞춘 두꺼운 나무 재질 공동현관문이 진짜 쿵쿵. 몇 층에 사는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매일 꼭 자정 넘어,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들어오는 세입자가 있다. 쿵. 쾅! 덕분에 선잠을 깨는 밤이 적잖다. 고오맙습니다.


공동 현관 복도를 타고 겨울엔 찬바람이 더 많이 스며든다. 집 창문도 부실하다. 그렇잖아도 홑겹인 창문은 창틀마저 헐거워서 냉기가 솔솔 들어온다.


창문만 좀 손봐도 훨씬 낫겠구만. 그렇잖은가. 소음도 열효율도 모두 잡을 수 있는 게 창호다. 집주인인 아일랜드 할배 M은 집에 투자할 생각이 1도 없다. 빨리 팔고 튀고 싶어한다. 그 이유도 알겠다.


아래층에 코골이 빌런이 산다

이사를 결심한 가장 직접적인 이유다. 아래층, 로어그라운드 남자는 시도때도 없이 코를 드르렁거리며 잔다. 낮도 밤도 없다. 코를 어떻게 골면 위층까지 이렇게 잘 들릴 수 있을까? 처음엔 웃겼지만 이젠 영 신경 거슬리는 지경이 됐다. 남자의 상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게다가 종종 여성과 큰 목소리로 다툰다.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격렬할 때도 적잖다. 최근 들어서는 음악에 꽂혔는지 밤이고 낮이고 음악을 틀어댄다. 아마 중동 사람인 것 같은데 그곳 특유의 음악을 크게 틀고 중얼중얼 따라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종교 음악일까? 경전을 외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괴롭다.


우리만 괴로운 게 아니다. 처음 이 집에 들어올 때 가재도구가 거의 새것 상태로 있다고 좋아했었다. 직전 세입자는 중국인 여학생이었는데 들어온지 얼마 안 되어서 갑자기 나갔다고 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그때 알아챘어야 했어.


관리인 T의 증언이다. 그 중국 학생은 소음을 피해서 침대를 거실로 옮겨보기도 하고 갖은 애를 쓰다가 두손 두발 다 들고 나갔다고 했다. 이 집에선 잠을 잘 수가 없다면서. 남은 계약 기간 동안 월세도 다 포기하고. 오죽 괴로웠으면 이 비싼 월세까지 포기하고 도망쳤겠나. 우린 그것도 모르고 뭔 살림살이가 다 있냐면서 좋아만 했던 거였다.


세입자만 괴로웠겠나? 집주인 할배 M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 게 분명하다. 아래층 골칫거리는 해결하기가 어렵다. 차라리 빨리 이 집을 팔아치워서 현금화하려고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거의 매주 한 번은 매수 희망자가 집을 보러 오는데 10개월째 노답이다.

안 팔리니까 호가를 내렸나보다. 그라운드플로어 원베드룸 플랏 한 칸이 14억.

거리 소음도 문제다

캔싱턴의 주요 도로 중 하나에 면한 집이다보니 도로의 소음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주요 도로라는 건 그만큼 차량 통행량이 많다는 뜻이다. 창 밖으로 빨간 2층버스가 지나다닌다. 일반 차량 뿐 아니라 수시로 경찰차와 구급차 소방차가 달린다. 영국의 이런 특수 차량 사이렌 소리가 얼마나 큰지는 아는 분들은 다들 아실 거다. 난 '전쟁터 중에서도 최전선에 나앉아 있는 느낌'이라고 말하곤 한다.


게다가 메인 로드와 이면도로가 만나는 모퉁이 집이다. 거리를 걷는 행인들이 정말 많다. 주민과 학생들과 여행자들까지. 또 주방 창문 바로 앞에는 공유 자전거 전용 주차 공간이 있다. 자전거를 빌리고 반납하는 사람들이 무시로 멈춰서서 띠링띠링 스캔음을 내고 웃고 농담하고 전화통화를 하고 울고 따지고 싸워댄다.


주로 금요일 밤에는 새벽까지 술이나 약물에, 아니 최소한 분위기에라도 취한 젊은이들의 고성방가를 참아야 한다. 여긴 임페리얼 컬리지 바로 앞이고 학생 인구가 많다...안전한 지역이라는 장점을 뒤집으면 밤에도 거리에 사람이 꽤 많다는 단점으로도 연결된다.


거리의 예쁜 가로등은 심미적 만족감을 주지만, 잠들고 싶을 때는 빛공해일 뿐이다. 거실은 나무 덧창으로 가리면 되는데. 침실 블라인드가 고장난 뒤 설치까지 너무 오래 걸리고 있다. 이곳 생활 1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런던 속도는 영 적응이 안 되는 것이다.


안 되겠다. 나가자. 내가 귀국하기 전에 이사를 마무리 지어놔야 한다.


새 집을 찾아야 한다

집을 비우려면 두 달 전에 통보해야 한다. 11월 18일까지는 알려야 한다는 뜻이다. 가능하면 M에게 이야기해서 12월 초에 나가는 방향도 고려한다. 하루라도 편하게 지내고 싶다. 계약 종료를 고지해야 할 시점까지 일주일도 안 남았군.


새 집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안전해야 한다. 가능하면 24시간 컨시어지가 있으면 좋겠다.

따뜻해야 한다. 제발 2중창...

조용해야 한다. 메인로드는 사양함미다.

월세 2800파운드 안팎

아이 학교와 너무 멀어지면 안 된다

올 퍼니시드. 이제 와서 가구나 가재도구를 살 수는 없다.


우린 불꽃 뷰잉 중이다. 후보지는 주로 배터시 파워스테이션 인근 신축 아파트들이다.

이전 29화 런던 10살짜리 생일파티 클라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