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돈내산 1년 살기 계획으로 온 런던. 작년 12월 말에 왔는데 벌써 11월이다. 때로 여기가 답답하다가도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 한숨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다 떠나서, 10살 딸 아이는 런던을 사랑한다. 적응 못해서 돌아가자고 보채는 것보다는 정확히 127배 낫다.
분명 1년으로 계획하고 왔는데 딸은 필사적으로 중학교 입학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이것도 고마운 일이다.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 하겠다는 태도로 드러눕는 것보다야 낫지 않은가. 시험 공부를 하면서 엄청나게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장하다.
어쨌거나 나는 기러기 아빠로 살 생각은 (거의) 없다. 가족이 같이 지내야 가족이지,라고 생각한다.
그럼 둘 중 하나지. 애를 데리고 들어가거나 내가 여기서 일을 하거나... 영어가 물론 능숙하지 않은지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겠으나. 뭐 알아나 보자라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려보는데...볼수록 신기하다. 이 월급 받으면서 어떻게 사나?
우리 가족의 피난처, 빅토리아알버트 뮤지엄의 일자리를 검색해봤다. 아니, 내가 여기서 진짜 일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검색을 해본 거다. 집 앞이라 늘 가는 곳이니까.
https://www.vam.ac.uk/vacancies 얼른 봐도 급여가 높지가 않다. 풀타임 노동자여도 3만 파운드도 못 받는 자리도 많다. 심지어 시니어 매니저 급여가 5만 파운드 선 아래로 제시되어 있다. https://vam.current-vacancies.com/Jobs/Advert/3670353?cid=3279&rsid=24732&js=0&LinkType=1&FromSearch=False 열정 페이인가?
박물관이 돈이 없어서 그런가 싶어서 은행을 검색해봤다. 로이드 뱅크의 급여 수준은 어떨까?
Entry-Level Positions (e.g., Customer Service): £18,000 - £25,000 annually.
Mid-Level Roles (e.g., Analysts, Managers): £35,000 - £55,000 annually.
Senior Management (e.g., Lead Managers, Heads of Department): £70,000 - £120,000 annually.
Executive Positions (e.g., Director, Head of Division): Salaries in this category can range significantly, often reaching upwards of £200,000 annually.
신입 행원 급여 상단이 2만5천 파운드, 4천만 원대다. £22,000를 받는다고 가정하면 세금 때려맞은 뒤에 손에 쥐는 돈은 £18,982. 한국 돈으로 환전하면 3,500만 원도 안 되네? 한국 시중 은행들의 대졸 신입 행원들 초봉이 아마 세금 떼고 5천만 원이 넘을텐데. 한국보다 적다고?
와중에 소득세도 어마어마하다. 경력이 쌓이고 능력을 인정 받아서 세전 연봉이 5만 파운드를 조금 넘는 순간 소득세율이 40%가 된다. 급여가 찔끔 올랐는데 세금이 왕창 늘어나서 실수령액이 줄어드는 마법?
예를 들어 은행의 Senior Manager 쯤 되어 연봉이 £95,000(대략 1억7천만 원) 정도로 늘어나면 좋을 것 같은가? 세금 떼고 손에 쥐는 돈은 £59,676. 가까스로 1억 원 넘는 수준이다...
같은 일을 하면 미국에서 받는 급여가 영국의 1.5배는 될 거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났다. 인공지능에게 일을 시켜봤다(요즘 자주 이러고 논다).
Oxford의 Postdoc은 37,500파운드, 6천만 원쯤 받는데 Stanford 박사후연구원 연봉은 80,000달러, 1억이 넘는다.
BBC Journalist 평균 연봉은 40,000파운드, 7천만 원이 안 되는 걸로 검색되는데 CNN Journalist들은 평균 70,000달러, 9천만 원 넘게 받는다고 제시한다.
영국 은행원 평균 연봉은 5천만 원대로, 미국 은행원은 8천만 원대라고 인공지능은 분석했다. 진짜 1.5배쯤 되네?
반면 런던의 물가는 극악하다. 물론 마트에서 사는 신선식품은 가격경쟁력이 괜찮은 편이다. 삼시세끼 밥을 집에서 해먹고 숨만 쉬고 있으면 엄청나게 돈이 깨지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서 그렇지.
런던에서도 물가 비싼 캔싱턴에서는 세 가족이 숨만 쉬고 있어도 나가는 돈이 600만 원 가까이 된다. https://brunch.co.kr/@ea77230899864d4/13 물론 여기에는 장 보고 먹고 마시고 아이 가르치고 공연도 좀 보고 여행도 다니고 하는 비용은 하나도 포함 안 됐다.
와중에 사립학교 학비에 내년부터 부가세가 붙는다. 무려 20%. 학교에 따라 여러 방법을 찾아서 저 인상폭을 모두 부모에게 전가하지는 않는 것 같다. 아무튼 엄청나게 오른다. 초중고등학교만 오르는 줄 알았더니 11월 4일에 잉글랜드 지역의 대학 학비도 올린다는 발표가 있었다.
UK students will pay more for university in England next year, as undergraduate tuition fees rise to £9,535 a year.
It is an increase of £285 on the fees, which have been frozen at a maximum of £9,250 since 2017.
이 정도면 약과인가?
그래프는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더 많이 올려야 하는데 조금만 올리기로 했어"라는 뜻이다. 학비가 그동안 거의 동결되어 왔으니 학교마다 부담이 컸다. 대학마다 사활을 걸고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했고, 그 틈을 타고 중국인 유학생들이 엄청나게 밀려들었다. 계속 이렇게 갈 수는 없으니 등록금을 좀 올리겠다는 거지.
브렉시트 이후로 모든 게 더 안 좋아졌다고 한다. 오늘 만난 런던대학교 교수님은(영어로 40분 넘게 이야기하고 너무 피곤해졌...) 그 전부터도 영국 경제는 사실 좋지 않았다고 했다. 브렉시트가 트리거가 되어서 더 빨리 더 광범위하게 모든 게 무너지고 있을 뿐이라고.
이런저런 꼴을 보면 영국에 자리 잡고 살기가 쉽지 않은 게 분명하다. 오일머니와 올드머니, 중동의 석유 부자와 원래 돈 많았던 혹은 나이드신 분들 말고는 모두가 팍팍하다는 말도 맞는 것 같다.
아니 런던에서 잘 지내는 한국 분들은 대체 어떻게 사시는 건가요? 정말로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