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를 보다가 놀란다. 한국 TV에서 저런 장면이 나왔다가는...심지어 그게 공영방송 KBS였다면? 상상도 안 된다.
시작은 평범하다. 한국으로 치면 KBS의 장수프로그램 아침마당 격인 BBC 브랙퍼스트 2부가 시작되자 진행자가 남자 출연자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너 약혼했다면서?" 존은 환하게 웃으면서 프러포즈를 받았다고 했다.
남자가 프러포즈를 받았구나 생각하는 순간 사진을 한 장 보여줬는데
음... 동성 파트너끼리 여행 갔는데 파트너가 깜짝 프러포즈를 했단다. 영국에선 동성간 결혼도 물론 합법이다. 법이야 그럴 수 있겠는데 공영방송 아침프로그램에서 이런 장면을 내보낸다. 한국이라면?
아예 주제가 '노년에 접어든 동성애자의 자아 찾기'쯤 되는 드라마도 방송된다. Mr Loverman이라는 드라마는 8화까지 공개됐다. 기자님의 전문적인 리뷰는 가디언 기사로 보시기 바란다. https://www.theguardian.com/tv-and-radio/2024/oct/14/mr-loverman-review-magnificent-tv-that-will-tear-your-heart-open
배리는 성 정체성을 숨기고 여성과 결혼해서 자녀도 여럿 낳고 살아 왔다. 오랜 연인은 친구 행세를 하면서 늘 주변을 맴돈다. 아내와 아내 친구들과 남성 연인이 식탁에 함께 앉아 식사하고 웃고 떠드는 식이다.
배리가 정체성을 시원하게 공개하고 아내와 헤어질 수 있을지,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여러 각도에서 다루는 드라마다.
내용이 내용이다보니 동성간 신체접촉 장면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배리와 대니얼이 청소년 시절부터 오래된 연인임을 보여준다. 둘을 찍던 카메라가 갑자기 화분 뒤로 들어가지 않는다. bbc 영상은 전혀 상징적이지 않다. 직접적이다.
동성애자가 특정 분야에는 없으리라는 법이 없다. 성직자 가운데도 동성애자가 물론 있고 이들도 방송 화면에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한다.
영국 국교인 성공회 한 신부는 성직자가 되기 전부터 공개적인 동성애자였다. 게이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던 사람이다. https://www.richardcoles.com/about/
사제가 된 뒤에도 정체성을 숨기지 않았다. 역시 사제인 동성 파트너와 결혼에 준하는 civil partnership, '시민 동반자'로 공개적으로 지내기도 했다.
이 파트너와 사별한 뒤 또다른 사랑(물론 남성)을 만났다는 사실도 당당하게 공개한다.
포용이라는 단어마저 '양성애자 중심 사회'를 전제한다. 힘을 가진 다수가 소수를 내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니까. 누가 누구를 끌어안는다는 말인가.
런던에서 체감하는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은 그냥 '사회의 일부'다. 전혀 특별하지가 않다. 혐오와 거부의 대상도, 그렇다고 배려해야 할 약자도 아니다. 이성애자들과 별다를 것 없다. 만나고 사랑하고 싸우고 이별도 하는 평범한 사람들. 신기하다.
나는 한국에서는 동성애자를 본 적이 없다. 방송에 나와서 공개발언을 하는 홍석천 같은 분들 말고 실제로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다기보다는 밝히지 못하는 것이리라 막연히 짐작할 뿐이다. 어디에나 있는 존재가 한국에만 유독 없을 리가.
보수 기독교 신도가 서울 도심에 집결해서 차별금지법 반대 시위를 벌이는 사회에서는 스스로 밝히기 어렵지 않을까? 적어도 목사, 신부, 스님들이 '나 사실 동성애자요'하고 나서기는 어렵겠다. 동성간 성적 접촉 장면을 방송은, 특히나 공영방송은 내지도 못할 것 같다. 난리가 날 테니까.
암튼 달라도 너무 달라서 런던살이는 신기하고 놀랍고 때론 충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