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는 누가 손가락으로 짚어주지 않아도
친구의 집과 다르고, 옷이 다르고, 신발이 다르고, 도시락이 다르고,
미술 용품이 다름에서 가난을 말없이 인지한다.
청춘이 되어서는 가지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곳을 참아야 함에서
가난을 터득하고.
나이 먹어서는 잔망스러운 돈벌이로 허스레를 치장하며 가난이 죄는 아닌데
부끄러운 듯 감추게 되었다.
결혼 후에는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들 녀석이 친구들은 금이빨, 은이빨 하나씩
다 있는데 저 만 없다며 심통을 냈다.
그렇다.
가난은 남들 다 가졌는데 나만 없는 그것 때문에 심통이 난다.
가난은 다름이고 심통이다.
어찌할 수 없어 심통이 나고 금방 바뀔 수 없음에 심통이 난다.
금니와 은니의 가치를 몰라도 나만 없음을 직관하는 걸 보니
없음이란 저 작은 몸뚱이로도 다름이 와닿는 모양이다.
가난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소리 내지 못하고 발버둥 치고
가난이란 선상에서 조용히 발을 빼려는 심상이고
가난이란 선상에서 누군가와 나란히 서는 것을 꺼려함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러다 보면 나아질까 하는 기대감에
소리 내지 못하는 아우성이다.
가난은 자존심은 있으나
품위는 없다.
그 자존심 때문에 가난이다.
먹고사는 동안에는 버리고 후에 챙겨도 될걸
버리지 못해 가난이다.
가난은 무서운 것이다.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데도 티가 난다.
가리고 감추고 덮어 씌우다가 더 티가 난다.
많이 날 때도 있다.
피부에서도 머리칼에서도 말에서도 행동에서도 습성에서도.
가난은 파고드는 습성 때문에 배어 나오는 무서운 놈이다.
가난은 불편한 것이다.
우위에 밥이 먼저니
꿈을 미루거나 꿀 수 도 없게 하기도 하고
나의 의지를 꺾고
나의 발언에 힘이 실리지 않고
선택의 길목을 막으며
포기를 당연하게 한다.
가난은 그렇게 항상 약자일까?
가난은 세습일까?
가난은 보리밥에서 쌀 밥으로
김칫국에서 고깃국으로 바뀐다 해도
살로 가지 않는 허함이다.
먹어도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해갈이다.
중학교 다닐 때쯤 썩은 이를 빼내고 드디어 금니를 박아 넣던
"그날"
자식의 웃음을 결코 잊지 않음이 가난 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