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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로 도망친 이유

국경 두번 건너 현실이 데려온 곳

by K 엔젤

어쩌다 빅토리아, 그리고 어쩌다 시애틀

올해 4월, 온타리오에서 칼리지를 졸업했다. PGWP 신청을 하고 나니, 문득 밴쿠버가 떠올랐다.
작년 여행 때 좋은 기억이 있었고, “영주권은 밴쿠버가 더 수월하다”는 근거 없는 확신도 있었다.

그래서 고민도 없이 짐을 쌌다.직장에는 “밴쿠버로 간다”고 통보했다.
“그동안 고마웠다, 나중에 직장 못 구하면 다시 올게.”
정든 온타리오를 뒤로하고 6월 초, 빅토리아로 향했다. 그리고 3일 만에 시애틀행.

빅토리아에서 550불짜리 집을 구했는데, 방은 형편없고 룸메이트들은 bitches.
“이럴 거면 차라리 시애틀로 가자.”

6월 6일, 짐을 또 싸서 이모 집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8월 8일, 크루즈 여행까지 합류했다.
부모님과 이모 가족과 함께 8월 15일까지 바다 위에서 보냈다.

결국 계산해 보니, 6월 6일부터 8월 19일까지 꼬박 3개월을 미국에서 보낸 셈.


이모 집에 있는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캐나다에서 혼자 버티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막내이모는 어느 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냥 미국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리고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도 살 수 있다더라. 당장 학교부터 등록해.”

그 말은 농담 같았지만, 결국 나는 한국 BBQ 식당에서 유학생 신분으로 위장(?)해 서버로 3일 동안 일했다.

이모 등에 업혀 미국에서 살아보니 솔직히 너무 편했다. 빅토리아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던 생활이 갑자기 허무해질 정도였다.

결국 빅토리아 생활을 정리하기 위해, 이모와 함께 배를 타고 캐나다로 건너갔다.

짐을 모두 싸 들고 다시 씨애틀로 돌아왔다.


결국 다시 캐나다 행, 그리고 벤쿠버 집 계약

미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살 바에는, 차라리 캐나다로 돌아가는 게 낫다고 결론을 내렸다.

크루즈 여행이 끝난 8월 19일 월요일, 이모와 부모님과 함께 국경을 넘어 벤쿠버로 향했다.
하루 동안 5곳을 보고 다행히 한 곳과 계약이 성사됐다.

부모님은 21일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나는 오늘부터 이 집에서 살 계획이다.

원래는 베이스먼트 820불, 2층은 850불로 나와 있었다. 그래서 용기 내 물어봤다.
“2층 방 800불로 할인 가능할까요?”

조건은 있었다. 최소 3개월 계약.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달 335불은 현금으로 줄 수 있냐고 해서 지갑을 열어보니 100달러 세 장, 잔돈 24달러, 그리고 50달러 한 장. 방값도 깎아줬는데 25달러만 건네긴 좀 그래서 50달러를 내밀었다.

주인아줌마는 15달러는 나중에 돌려주겠다며 웃었다.

창문 커튼이 조금 짧다며
“하루빨리 새 커튼 달아줄게”라고 말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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