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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찐 T, 엄마는 찐 F

무심한 딸의 웃픈 고백

by K 엔젤

“우리 딸 목소리 한번 듣기 힘드네~”
먼저 걸려온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반가운 목소리. 그 안에는 매일 기다려온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야, 엄마.”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먼저 전화를 건 적은 게 손에 꼽는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다 보니, 엄마에게 연락하지 않는 내 무심함도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애교도 없고, 표현도 서툰 딸. 엄마가 나를 그리워한다는 걸 알면서도 먼저 전화를 걸지 않는 매정한 딸이라는 걸 스스로 안다.

엄마는 늘 씩씩하고, 애교 많은 딸을 꿈꾼다. 그래서일까. 전화를 끊고 나면 늘 미안함이 남는다. 내 무뚝뚝한 한마디가 엄마를 기쁘게도, 서운하게도 만들 수 있다는 걸 아는데도, 쉽게 바뀌지 않는 내 성격.

어느 날,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을 꺼내 오래 들여다봤다. 환하게 웃는 얼굴은 지금의 엄마와는 또 다른 사람 같다. 그 사진을 보다 보면 어린 시절 엄마의 손길, 그 사랑이 한 장면씩 필름처럼 지나간다. 이제는 주름이 깊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엄마를 보면, 고맙고 또 미안하다.

엄마와 딸은 사랑하고, 미워하고, 또다시 사랑한다. 복잡하게 얽힌 그 감정의 끝에는 결국 엄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었다는 걸, 나는 이제서야 조금씩 깨닫고 있다.

사춘기 시절의 나는 엄마에게 상처를 주기만 했다. 제멋대로 굴고, 신경질을 내고, 가혹한 말을 던지던 철없는 딸. 부모의 마음은 결국 자식이 행복하길 바라는 것뿐인데, 그 단순한 진심을 깨닫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지금도 가끔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내가 불안하고 힘들어하는 건 다 자기 탓이라며 자책하는 엄마를 보면 마음이 더 아리다.

이제는 엄마의 모습이 예전과 다르다. 늘 내 옆에서 에너지가 넘치던 엄마는 이제 멀찍이서 내 행복만 바라보는 나이 든 엄마가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면 마음 어딘가가 저릿하다.

언젠가 내가 엄마가 되면, 엄마는 친정엄마가 되고 사람들은 할머니라 부르겠지. 그래도 나에겐 그냥 ‘엄마’일 것이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엄마가 내게 준 사랑은 그대로 남아, 내 아이에게도 이어지겠지.

내가 진짜 엄마가 되어 보면, 그제야 지금의 엄마 마음을 다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 아이가 속을 썩일 때마다, 어릴 적 엄마가 매일 보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도 엄마는 내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해줄 것 같다.

양희은과 이수현의 엄마가 딸에게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가사는 때로 내가 엄마에게 전하는 말 같고, 또 엄마가 내게 해주는 말 같기도 하다. 내가 엄마가 되는 날, 이 노래는 아마 더 아프고 따뜻하게 다가올 것이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는 날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더 좋은 딸이 되고 싶다. 엄마가 원하는 딸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그 소원을 마지막으로 이뤄드리고 싶다. 지금이라도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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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 아이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 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딸]

난 한참 세상 살았는 줄만 알았는데 아직 열다섯이고

난 항상 예쁜 딸로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미운 털이 박혔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알고픈 일들 정말 많지만

엄만 또 늘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내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지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줄 수 있겠니?

넌 나보다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해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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