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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에 팔린 양심

지하철 한번 타기 힘든 캐나다

by K 엔젤
버스 무임승차에 대한 뉴스


캐나다에도 티머니처럼 교통카드가 있다. 버스에서 버스로 2시간 내 환승하면 추가 요금이 없다.

한국과 다른 점은, 갈 때랑 돌아올 때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타도 환승이 된다는 것.
“이건 한국보다 낫네?” 잠깐 우쭐했다.

하지만 환승만큼은 한국이 최고다. 서울 지하철은 거의 퍼즐판처럼 설계돼서
갈아탈 때도 계단 한두 개만 오르면 되는데, 여긴 한 번 갈아타려면 길을 나가야 하거나,
버스를 타고 또 역으로 돌아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캐나다에 와서 처음 메트로타운 역을 가려고 지하철을 탔다.
지도도 확인했고, 내 생각엔 분명 맞는 열차였다. 그런데 창밖 풍경이 낯설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역 이름에 'Metrotown'은 안 보이고, 오히려 점점 더 낯선 지명들만 지나쳤다.

'잠깐… 왜 목적지가 멀어지지?' 손에 땀이 살짝 차는 걸 느꼈다.

다음 역에서 부랴부랴 내리니, 내가 타고 있던 건 반대 방향 열차였다.

그때 처음 알았다. 여긴 “맞는 열차”라는 개념이 없다. 그냥 “맞는 방향”이 있을 뿐이다.

한국 같으면 출근길 5분 지각 정도로 끝났을 실수가, 여기선 왕복 30분짜리 모험이 된다.


구글 맵으로 확인해 보니, 내가 가려는 역에 도착하려면 승차장에서 방향을 꼭 확인하고 타야 했다.

'아 역시 반대 방향이었구나.' 얼른 다음 역에서 내렸다. 출구 쪽으로 뛰면서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잠깐, 캐나다는 직원 호출 서비스도 없는데 다시 나가서 카드를 찍으면 요금 또 부과되는 거 아냐?”

문 앞에서 발이 딱 멈췄다. 그 순간 머리를 스친 또 다른 생각.

“그냥 이 문을 뚫고 지나가면 안 되나?” 하지만 그깟 몇 달러 아끼자고 무임승차라니.

게다가 사람들의 시선이 내 등 뒤에 꽂혀오는 느낌이었다.

며칠 전 본 “무임승차 단속 강화” 뉴스가 뇌리를 스쳤다.

결국 나는 조용히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다시 찍었다. 그리고 반대 방향 열차에 몸을 실었다.

추한 모습으로 살 순 없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추가 요금과 함께 인생 수업료를 냈다.


천 원 이천 원에 벌벌 떠는 내가 막상 내가 한두 푼에 아쉬운 상황이 돼 보니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캐나다에서도 무임승차를 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벌고 있는 나도 추가 요금을 내는 걸 아까워하는데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지하철 요금을 내는 게 얼마나 더 아쉬울까 싶다.


캐나다 버스의 경고 문구

지하철 무임승차만 캐나다에서 문제인 게 아니다. 버스 무임승차도 요즘 뜨거운 화제다.

Proof of Payment is required at all times.
“지불 인증은 항상 필요합니다.”

퇴근길, 버스를 탔는데 요금표 옆에 붙어 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내 30년 뚜벅이 인생에서 처음 보는 경고.
요금을 내고 탄 걸 증명하기 위해 security guard가 하차 시 확인할 수 있다는 무서운 내용이었다.

‘아니, 누가 버스를 돈 안 내고 타?’
‘게다가 매번 그걸 어떻게 검사한다는 거지?’

그때 버스가 몇 정거장 못 가더니 멈춰 섰다. 아무도 내리지 않았는데, 5분 동안 꼼짝도 안 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리고 웅성거림이 퍼졌다. 나도 무슨 일인가 싶어 창밖을 봤다.

그리고 이럴 수가. 내가 막 의심했던 그 일이, 현실이 되어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여자애 두 명이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보안요원에게 붙잡혀 있었다.


그 여학생 둘은 교통요금 규정을 어기고 환승 버스를 탔는데 제대로 요금을 냈다면 티켓을 두 장 가지고 탔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보안요원에게 보여준 티켓은 갈 때의 버스요금이 찍힌 티켓 한 장이었다. 법대로라면 올 때 티켓 (환승 요금이 추가된 ) 한 장이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보안요원은 두 여자애의 신분증을 요구했다. 신원조사가 끝난 뒤에야 그들을 놓아주었다.

창밖에서 그 광경을 보는 동안, 머릿속에는 엉뚱한 생각이 하나 스쳤다.

“캐나다는 지금, 무임승차에 진심이구나.”

넘쳐나는 이민자들. 정부는 이제 국가에 세금을 제대로 내는 사람들만 환영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4월, 최저임금으로 일하는 외국인들에게는 영주권 신청에 필요한 외국인 고용허가증 발급이 제한됐다.
이민의 문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점점 닫히는 문. 그리고 그 앞에서 줄을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

영주권 신청 서류를 준비하며 점수 하나하나에 예민해지고 있는 내게, 그 버스 안 풍경은 썩 달갑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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