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 시작, 멘탈은 흔들

기저귀 사이에서 내 적성도 같이 갈아본 첫 주

by K 엔젤


파이널 시험 전날




실습기관 정보가 담긴 메일이 왔다



2025년 4월 28일 월요일 – 실습 첫날

며칠 전, 이론 수업과 Lab 수업을 모두 마쳤다. 이제 남은 건 Practicum, 실습이다. 이 과정을 통과해야만 학교를 졸업할 수 있다.
Long Term Care 기관에서 4주, 그리고 Home Support와 Assisted Living 센터에서 2주. 두 곳에서 실습이 정해져 있었다.

마지막 랩 수업을 마치고 반 친구들, 선생님과 함께 기념으로 찰칵 사진을 찍으며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실습 첫날이었다.
실습 시간은 새벽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6시까지 기관에 도착해야 했기에, 다행히 5시 25분 첫차가 있었다.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서 8분. 최소한 5시 10분에는 집을 나서야 했다.

아침은 간단히 시리얼. 전날 준비해 둔 점심을 가방에 넣고 123번 버스를 타러 나섰다.
그런데 막상 정류장에 도착하니 반대편인지 헷갈렸다. 근처에 있던 라틴계 할머니께 물어봤지만, 정확한 정보는 없는 듯했다.
‘혹시 잘못 타면 어떡하지’ 불안해질 즈음 버스 기사에게 물어보고서야 반대편 정류장에서 타야 한다는 걸 알았다.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실습 기관에 도착하니 인솔자는 아프가니스탄과 러시아 혼혈의 여성 RN(Registered Nurse)이었다.
실습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중간 평가와 파이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전반적인 설명을 들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우리가 실습 기간 동안 한 명의 클라이언트를 전담해 케어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샤워를 시키는 방식이 랩 수업에서 배운 것과는 조금 달랐는데, 그 차이가 Safety 점수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아 이제부터는 진짜 현장이구나.’


이후에는 함께 실습하게 될 친구들과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인도계 친구들은 대부분 자기소개 때 PR을 강조했는데, 그걸 들은 인솔자가 한 말이 인상 깊었다. “PR을 목표로 실습을 하면 심리적으로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실습은 오직 환자를 케어하는 데 집중하고, 내가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하라”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 말이 오히려 내 마음을 조금은 편안하게 해 주었다.


자기소개가 끝난 뒤, 우리는 건물 내부를 함께 둘러보았다. 주요 공간들을 빠짐없이 살펴보며 ‘앞으로 이곳이 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7시 40분쯤, 한바퀴를 돌고 나니 시간이 조금 남았다. Satwik과 함께 밖으로 나가 짧게 바람을 쐬고 근처에서 간식을 사 먹으며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졌다. 첫날의 긴장은 달콤한 초콜릿 한 조각에도 잠시 풀리는 듯했다.

원래는 오늘 우리를 안내할 담당자가 따로 있었지만, 일정이 바뀌어 대신 Ral이라는 케이스 매니저가 우리를 데리고 다녔다. 그는 건물의 구석구석을 세세하게 소개해주었다.

입소자들이 쉬는 공간, 필요한 물품이 놓인 곳, 스태프 휴게실, 화장실, 세탁실 등. 실습 동안 자주 오가게 될 장소들을 하나씩 짚어 주며 설명했다.
이 기관에는 간호사 2명과 HCA 10명이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곧 저 숫자 사이에 내가 들어가겠구나.’ 순간, 설렘과 긴장이 함께 밀려왔다.


오늘 우리가 실제로 한 실습은 우선 Policy Checklist를 검토하며 초기 사인을 하는 것부터 시작됐다. 이어서 실습 중 자주 접하게 될 중요한 용어들을 함께 토론했고, HCA라면 반드시 숙지해야 할 정보들이 담긴 여러 바인더를 인솔자와 함께 살펴봤다.

첫 번째는 초록색 케어플랜 바인더였다. 클라이언트의 영양 정보와 중요한 건강 관련 사항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두 번째는 brief pads 색상 코딩 파일,
세 번째는 보라색 행동 관련 파일로, 특이하거나 주의가 필요한 클라이언트들의 정보가 담겨 있었다.
마지막은 흰색 바인더로, 클라이언트들의 목욕 온도 기록이 들어 있었다.

중앙 간호 스테이션에는 간호사들이 관리하는 환자 상태 파일들이 놓여 있었고, 그중에서도 특히 주의 깊게 봐야 할 클라이언트들의 프로필을 함께 검토했다.

인솔자는 설명을 마치며 HCA의 역할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강조했다.
청결 유지, 보습, 그리고 보호.
“Treatment는 간호사의 책임이지만, HCA는 그 사람을 보호하는 역할까지 맡는 거예요.”

그 말이 유난히 귀에 남았다. ‘치료가 아니라 보호.’ 실습 첫날, HCA라는 직업의 본질이 조용히 와 닿았다.

이후에는 클라이언트들이 실제로 머무는 방을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강조된 건 안전과 개인정보 보호였다.
침대에는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Call Bell이 설치되어 있었고, 낙상 방지를 위해 침대의 arm rail은 항상 올려두어야 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클라이언트들 역시 반드시 벨트를 착용하고 있어야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각 침대 옆에 붙어 있던 Virtual Individual Service Plan (VISP)이었다.
그 안에는 의료적 요구, 일상생활 수행 능력, 인지·행동 상태, 환경과 안전, 영양, 산소 공급 필요 여부 등 다양한 정보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정리되어 있었다. ‘아, 이건 HCA가 수시로 확인하라고 붙어 있는 거구나.’ 현장의 체계가 눈으로 느껴졌다.

건물 복도에는 뉴스레터, 월간 캘린더, 시설의 운영 목표, 식단표 등이 붙어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와 기관이 지향하는 방향을 읽을 수 있었다.

오리엔테이션은 오전 11시 반쯤 마무리됐다. 우리가 누구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마그네틱 네임태그를 유니폼에 달고 다녀야 한다는 안내도 받았다. 그리고 인솔자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강조했다.
“출석과 매일 작성하는 저널. 이 두 가지가 실습 통과의 핵심이에요.”

실습을 마치고 건물을 나설 때,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함께 실습하는 친구가 나와 또 다른 친구를 스카이트레인 역까지 태워주었다. 작은 배려였지만, 첫날의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아, 이 실습 생각보다 좋은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실습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압박감이 컸다.
4주 동안 좋은 인상을 남겨 이 기관에서 풀타임 잡 오퍼를 받아야 한다는 부담이 계속 나를 짓눌렀다. 게다가 몇몇 친구들이 “밴쿠버에선 HCA 자리 잡기 힘들어. 빅토리아나 외곽으로 가야 돼.”라는 얘기를 하는 걸 들으니 불안감은 더 커졌다. 나는 가능한 한 버나비 근처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싶었다.


또 하나는 이민자로서의 감정이었다.
캐나다는 다민족 사회라고 하지만, 오늘 아침 버스를 기다리면서 문득 느꼈다.
이곳에서 한국인은 늘 비주류라는 것. 인도계나 중국계 이민자가 훨씬 많은 현실 속에서, 아시안이라는 범주 안에서도 한국인은 작고 낯선 존재였다.
그건 아마 이민 1세대가 평생 안고 가야 할 어쩔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의 삶이 종종 묘하게 허전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오늘 실습은 그런 생각을 조금 바꿔줬다. 다양한 문화권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서로 돕고,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걸 보면서 ‘괜히 혼자 마음 졸일 필요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관에는 필리핀계 직원들이 많았고, 이 분야가 그들 중심으로 움직이는 듯했다.
그리고 입소자 명단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이름. ‘한O수’
익숙한 한글 이름 하나가 그날 내 마음을 이상하게 편안하게 만들었다.


또 하나 느낀 점은, 누군가 “Assisted Living이 더 낫다”라고 말했을 때 그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는 것이다.
Long-Term Care(LTC)는 신체적으로 아주 벅차진 않지만, 대부분 거동이 불편한 시니어들이라 작은 일까지 HCA가 도와줘야 한다. 그만큼 정신적인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곳이다.

반대로 Assisted Living은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그 환경이 내 성향과 조금 더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나도 저런 쪽이 편할 수도 있겠네.’

물론 지금은 실습의 시작 단계다. 시간이 지나면 내 적성과 성격에 어떤 시설이 더 잘 맞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나겠지.
지금 내가 할 일은 단 하나, 실습에 집중하는 것.
학교 졸업이라는 목표에 충실하고,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채워 나가는 것.
그게 지금 내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걸 다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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