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방인으로 살기
당시 나는 백인들만 99%인 곳에서 동양인 여자는 사람 취급도 안 해준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영어를 얼마나 잘하든, 미국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든, 어떤 학교를 다니든, 어떤 직업을 가졌든 상관없이, 백인들의 눈에 동양인은 애초에 경쟁 상대로 보이지 않았다. 미국에서 백인들과 지나칠 때마다 나는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비주류로서 살아가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기가 죽어서 다 못하고 집에 오는 날이 많았다. 열심히 살려는 마음으로 일했지만, 동양인 여자라고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들을 때마다 기가 꺾였다. 아시안 사람이 영어를 하는 것을 마치 신기하게 여기는 인종차별주의자들 때문에, 영어를 쓰는 것도 점점 지겨워졌다.
백인 우월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국가에서 살면 살수록 느낀 것은, 아시안은 설령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더라도 피부색으로 인한 보이지 않는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도 나는 그들에게 찢어진 눈을 가진 중국인일 뿐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나마 쉽게 친구들을 사귀었지만, 파란 눈의 금발 치어리더 애들이나 풋볼팀 친구들 그룹에 끼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은 너드 같은 친구들과 주로 어울렸던 것 같다. 대학에서는 같은 한국 사람들 아니면 아시아권 문화의 국제학생들과만 친해지기 일쑤였다.
영어가 모국어인 교포들조차 백인 그룹에 스며들지 못하고 같은 동양인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미국에서 사는 것에 대해 점점 더 회의감을 느꼈다.
우리나라에서 검은 머리의 교포들이 가수나 배우로 활동하는 것도, 현지에서는 동양인 가수가 성공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일이다. 캐나다에서는 '김씨네 편의점' 같은 한국인 이민자들의 삶을 그린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지만, 촬영 중 아시안계 캐나다인 배우들이 백인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동양인으로서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인정받고 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결론적으로, 이럴 바에는 차라리 한국인으로서 한국어를 쓰며, 내가 태어난 나라에서 인종차별 걱정 없이 마음 편히 사는 것이 더 낫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나는 미국에서 간호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와 어떻게든 자리 잡고 살아보려 노력했다.
거기다 나는 조기유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영어를 원어민처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강박증을 가지고 살아왔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려면 만 4세 이전에 영어권 국가에서 살아야 하고, 최소한 10살 이전에 이민을 가서 한국어를 차단하며 생활해야 그나마 원어민 언저리 끝에 닿을 수 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때 유학을 간 주제에 너무 터무니없는 환상을 가졌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제는 그것이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다 내려놓았지만, 나에게 영어는 결국 외국어일 뿐이다.
한 가지 웃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처럼 중고등 시절을 외국에서 보낸 사람들은 한국으로 돌아가서 3개월정도 지내보면 결국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것. 아무래도 사춘기 시절을 보낸 나라의 향수가 다시 그리워지나보다. 이제는 외국에 있으면 한국에 가고 싶은 이유는 한국이 그리워서라기보다는, 한국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수많은 경험으로 사소한 차별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생겼으니 내 30대는 여기서 잘 버틸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