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사람 있으면 소개 시켜줘
결혼, 그리고 육아. 생각만 해도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힌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참 쉽게 말한다.
“여자는 35 넘으면 노산이잖아.”
“그때 가서 애 낳기 쉽지 않아.”
“괜찮은 사람 만나면 빨리 결혼하는 게 좋아.”
나는 비혼주의자는 아니다. 하지만 결혼을 마냥 낙관적으로 보지도 않는다.
“35 넘어도 잘 살고 잘 낳는 사람 많아.”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렇게 늦게 결혼한 사람들조차 왠지 ‘겨우’ 결혼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결혼은 누가 정해주는 타이밍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때, 내가 원해서 하는 선택이어야 한다.
지금 나는 서른중반. 주변에서 쏟아지는 말은 비슷하다.
“더 늦으면 결혼 적령기 지난다.”
“애 낳으려면 늦으면 안 돼.”
“괜찮은 사람 있다면 더 늦기 전에.”
결혼식에 다녀오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조언들. 걱정일까, 간섭일까. 모호한 말들이 하나둘 마음을 건드린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대부분 20대에 결혼했다. 어머니는 스물다섯에 나를 낳으셨다. 하지만 지금은? 20대에 결혼하는 친구는 손에 꼽을 정도다. 30대부터 결혼을 생각하는 게 오히려 보통이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정리했다. 얻는 게 많으면 하는 거고, 잃는 게 많을 것 같으면 안 하는 거다. 결국 인생은 선택의 연속. 그 선택이 어디로 나를 데려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문제는 누구도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
고등학생 때는 수능이라는 기준이 있었다. 정답만 맞히면 길이 열렸고, 진로가 주어졌다. 하지만 결혼이나 출산에는 공식도 없고, 오답도 없다. 통계, 주변 이야기, 나의 가치관을 총동원해 스스로 정답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주팔자’에 기대는지도 모르겠다. 결정에 확신을 갖기 위해, 혹은 후회를 덜기 위해. 나 역시 사주에 관심이 많다.
“이렇게 사는건 내 팔자야.”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며 선택을 정당화하곤 한다.
하지만 어떤 길을 가든,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고,그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단지 후회를 덜 할 수 있는 길을 조심스럽게 찾아가는 중일 뿐이다.
벌써 서른 중반을 향해 가는 내가 다른 미혼 친구들을 걱정하는 건 웃긴 일이다. 내 코가 석자인 걸 알기에, 남들 결혼에 오지랖 부릴 여유도 없다. 결국 중요한 건, 어떤 선택을 하든 ‘나의 기준’으로 결정하는 것. 누가 정한 혼기가 아니라, 내 마음의 타이밍에 따라. 친구들의 청첩장에 흔들리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내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잠시 멈춰 서서 결혼이라는 선택지를 다시 들여다볼 것인지. 오늘따라 그게, 참 어렵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