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순간
나는 그릇이 작다. 여태 너무나도 많은 것을 쏟아부은 채 넘치도록 살았다. 만족할 만한 것조차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쓸데없이 불행하게 살았다. 모두가 나를 작고 소박하다며 평가할 때도 남 모를 욕심을 감당하기 위해 혈안이었다. 몸집을 불리는 통장 잔고를 보며 두려워했다.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쓰면 사라지는 것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채우지 않으면 안 되는 강박에 시달렸다. 역설적이게도 채우면 채울수록 여유는 라이터 불에 그을린 고무처럼 쪼그라들었다.
담는 행위를 줄이고자 다짐했다. 끔찍한 여덟 시간의 노동을 평범한 것에서 과감히 삭제했다. 화장실 두 개 딸린 쓰리룸 아파트, 연봉 사천 이상, 주식 수익률, 보장된 노후 등 사회가 일반적이라고 단정 짓는 노선을 말끔히 지웠다. 이제 나의 작은 그릇에도 여유가 생겼다. 처음으로 이렇게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