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덤하고 차분한 매력으로 얽힌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을 때쯤 툭 털어놓는 마음이 있다. “난 나 같은 사람이 싫다”고. 남의 기분 걱정하느라 싫은 소리 못 하고, 남에게 폐 끼쳤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며, 인생 사전에 남 탓이란 없어서 지속적인 자기 검열과 자기혐오의 늪에 빠져 결국에는 자기 자신마저 속여 버리는 내가 싫다고. 모난 부분이 없도록 둥글게 포장해 왔던 거짓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꺼내 주려고 할 때면, 순식간에 거대하고 뾰족한 철장을 세우는 가식적인 본능이 싫다고. 여태 혼자 삭이느라 고여서 썩은 쿰쿰한 속내를 꺼내 보이자면, 스스로를 별난 존재로 여기면서 이런 날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동정하는 자기 연민이 지긋지긋하다고. 사람 간의 사랑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면서도 사랑을 주고 구걸하는 욕망이 가증스럽다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내가 너는 좋다고 했다. 같지만 완전히 다른, “나도 나 같은 사람이 싫다”는 이유로.
나와 너는 겉모습부터 확연히 다르다. 나는 키가 작고, 너는 키가 크다. 나는 머리가 짧고, 너는 상대적으로 머리가 길다. 나는 얼굴이 둥글고, 너는 얼굴이 뾰족하다. 나는 콧방울을 누르면 부침개 판에 짓눌린 호떡처럼 넓게 퍼지지만, 너는 반으로 접힌 호떡의 유려한 직선처럼 곧게 뻗은 콧대가 버티고 서 있다. 나는 눈꼬리가 반달처럼 축 처져 있지만, 너는 초승달을 비스듬히 세운 것처럼 눈꼬리가 올라가 있다. 나는 무던하고 단정한 옷을 좋아하지만, 너는 화려하고 펑키한 옷을 좋아한다. 총체적으로 나는 순한 인상을 가지고 있지만, 너는 사나운 인상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나에게 쉽게 말을 거는 반면에 너에게는 쉽게 말을 걸지 못한다. 너와 같이 길을 걸을 때면 심리 상담을 해 준다며 접근하거나 불쑥 얼굴을 들이밀고선 예수를 믿으라는 길거리 전도자들의 자력도 소멸한다. 100% 순면 옷을 입은 나에게도 자석처럼 달라붙는 이들이 쇠 맛 나는 옷을 즐겨 입는 네 앞에서는 맥을 추리지 못하고 고꾸라진다. 움츠러져 있던 나의 어깨는 하늘로 비상하기 위해 도약하는 새의 날개처럼 넓게 펴진다. 참 신비한 일이다.
너와 나의 속모습은 차원이 분리된 것처럼 다르다. 너는 무산소 운동을 좋아하지만, 나는 유산소 운동을 좋아한다. 너는 물을 좋아하지만, 나는 풀을 좋아한다. 너는 사주에 수(水)가 없지만, 나는 금(金)이 없다. 너는 호화로운 삶을 꿈꾸지만, 나는 검소한 삶을 꿈꾼다. 네가 태산을 쌓으려고 할 때, 나는 티끌을 모은다. 너는 된소리의 욕을 할 수 있지만, 나는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다. 너는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를 무서워하지만, 나는 인간을 무서워한다. 너는 휴먼 영화를 좋아하지만, 나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좋아한다. 너는 살과 살이 맞닿아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지만, 나는 이불의 포근함이 닿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너는 미련 없이 인연을 끊고 정리하지만, 나는 정(情)에 휘둘려 애매한 만남을 지속한다. 너는 남에게 의지할 수 있지만, 나는 남에게 의지할 수 없다. 그래서 너는 사랑할 수 있지만, 나는 사랑할 수 없다.
그런 네가 나는 좋다고 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나 낳았으면 이 정도는 해 줘야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툭 던진, 가벼운 말이 그날따라 무겁게 가라앉았다. 너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고, 생활비가 모자라던 차에 엄마 카드 찬스로 갖고 싶었던 옷을 받았다며 웃음 짓는 너에게 나는 있는 옷을 또 사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어쩌면 엄마에게 생일 선물을 요구하며 부리는 자연스러운 어리광에 질투심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미성년자 딱지를 떼자마자 부모에게 용돈 받는 것 자체를 죄스럽게 여기기 시작한 나에게 남은 것은 희생의 되갚음뿐이라서, 혈육을 벗어나 확장된 인간관계에서도 받은 만큼 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고마움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나라서, 사랑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너와 다른 내가 가여워서, 결국 눈물을 훔쳤다.
부모를 향한 요구는 돈이 많은 집안에서 자란 애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단정하며 어설픈 자기 위로를 했다. 너와, 그리고 너와 비슷해 보이는 거리 위 사람들과 나의 갈림길 사이는 아득히 멀다고 여겼다. 엄마가 말한 그대로 가진 것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란 나의 운명은 홀로 삶에 대항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오해할까 봐 말하는 건데, 우리 엄마랑 아빠도 돈 없어. 나라고 뭐 걱정 안 하겠어? 근데 가족이니까, 내 부모니까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거잖아.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인생일 때 기대면 좀 어때. 혼자 하려고 하지 말고, 사랑의 방식을 조금만 바꿔 봐.”
너와 내가 유일하게 하나로 묶일 수 있는 공통 분모는 ‘첫째 딸’이다. 그럼에도 이토록 나와 다른, 멜로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인용하자면, 너 같은 여자는 처음이었다.
의지(依支)와 사랑을 함께 논할 수 있는 너와 나의 차이를 곱씹었다. 집안 배경과 돈이 아닌, 하얗게 식어 있는 낯빛과 발갛게 달아오른 낯빛의 대조를. 네가 떠난 후에 차가운 밤의 창을 열고, 숨을 쉬었을 때 서서히 채도가 낮아지는 얼굴색의 변화를 체온으로 느낀 순간 깨달았다. 들이쉬고 내쉬며 생(生)을 연명하는 호흡처럼 사랑도 일방적으로 흘러갈 수 없음을. 받는 것을 거부하는 단절은 주지 못하는 옹색한 사랑을 들키지 않기 위해 세우는 방어 기제라는 것을.
엄마에게 전화를 걸며 오고 가는 길이 여러 갈래로 트였으면, 하고 바랐다. 새로운 자취방으로 이사하던 날, 정수기 대여비를 대신 내 주겠다며 계좌번호를 읊은 아빠의 걸음을 멀리서나마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나 또한 그 정도는 받아도 되는 사람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