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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아 Dec 20. 2024

여자로 살기를 택했다

머리를 자르는 이유

 ‘여학생의 경우 앞머리는 눈썹 위, 뒷머리의 길이는 귀밑 5cm일 것.’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배정받은 중학교에서 날아온 입학 안내문에는 두발에 대한 규정이 명시되어 있었다. 내가 입학할 학교는 규정이 유난히 엄격하다던데. 매일 아침 교문 앞에서 자로 머리카락 길이를 재며 5cm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기합을 받는다는 무시무시한 소문에 잔뜩 겁을 먹은 예비 중학생은 단짝 친구와 함께 동네 시장 근처에 있는 미용실로 향했다.


“저... 곧 중학생이 돼서 그러는데요. 귀밑 5cm까지 잘라 주세요.”


 난생처음 홀로 맞닥뜨린 어른과의 대면에 멋쩍은 듯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와 대조적으로 손아귀는 힘을 주어 오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만에 하나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일하고 있는 엄마를 불러 성가시게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착한 아이의 우려 덕분에 잘린 머리 값을 무사히 치렀지만, 슬쩍 곁눈질하는 시야에 비친 거울 속의 낯선 모습은 당당하게 마주할 수 없었다. 본래 머리가 그렇게 긴 것도 아니었건만, 책에서 본 몽실 언니처럼 뭉뚝한 똑단발이 수치스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책 속의 배경처럼 정말 전쟁이라도 난 듯 황급히 옷에 달린 모자로 머리를 감춘 채 미용실 문을 나섰고, 얼떨결에 나와 쌍둥이가 된 단짝 친구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는 말은 참된 진리다. 호되게 잘린 머리 덕분에 호랑이 선생님들의 눈에 띄지 않은 채 평탄한 학교생활이 이어졌다. 그리고 정확히 일 년 뒤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면서 논란의 화두였던 학생 체벌이 사라지고, 두발 규정이 해제되었다. 젖살이 빠지지 않아 통통한 눈꺼풀 위를 가로지르는 검은 아이라인과 쥐를 잡아먹은 듯 시뻘건 입술을 한 친구들이 하나둘씩 늘어났고, 몽실 언니 머리 또한 자연스레 금단의 귀밑 5cm를 깨부수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곱슬곱슬한 머리를 매직으로 펴고, 나름의 멋으로 염색을 했다. 악명 높은 의무 야간자율학습조차 사라진 상황에서 시작한 고등학교 생활은 떨떠름할 만큼 자유로웠다. 나는 말을 안 듣는 것이 말을 잘 듣는 것보다 더 어려운 아이였고, 학교는 자유를 주었지만 나는 누릴 줄 몰랐다. 괜히 콕콕 찔리는 양심이 아파 혼자서 지켜야 할 규정을 세웠고, 정말 하고 싶은 색을 뒤로한 채 적당히 티가 나는 갈색으로 검은 머리를 덮었다. 조용하고 바른 안경잡이 모범생이 갖춰야 할 행실을 벗어나지 못한 열여덟의 사춘기는 얇은 머리카락처럼 얕게 앓고 끊어져 버렸다.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는 10대 끝자락의 시원섭섭한 이별 뒤 대학생이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직접 번 돈으로 파마를 했다. 당시 유행했던 C컬 파마를 하기 위해서는 20만 원이 넘는 거금을 지불해야 했는데, 자릿수가 바뀐 통장 잔액보다 얼마 주고 했냐는 엄마의 잔소리가 무서워서 요즘 물가에 10만 원이면 싸게 한 거라고 앞서서 거짓 허풍을 떨었다.

 허풍이 몰고 온 후폭풍은 배고플 때 찾아왔다. 학생 식당 옆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결제할 때조차 덜덜 떨리는 손은 아침부터 시작된 연속 강의로 배가 고파 덤으로 집은 100g짜리 삼각김밥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20대의 초봄은 굶주린 내면 채우기를 철저히 무시한 빛 좋은 개살구였다. 돈 들인 머리의 컬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우와, 선생님 남자 같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지역아동복지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던 중 9살 남자아이에게 들은 말이다. 나는 사회로 내던져지기 직전의 4학년 마지막 학기에 뒷머리가 목덜미를 겨우 감쌀 만큼의 길이로 머리를 짧게 잘랐다. 실연했다는 등의 감정에 휩쓸린 촌스러운 이유는 아니었다.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미성년자 취급을 받기 일쑤인 둥글고 순진해 보이는 앳된 모습을 탈피하고 싶다는 이성적인 사고에서 나온 결심이었다. 외면으로 드러나는 나이 듦에 민감한 한국 사회에서 동안이라는 것은 소비해야 하는 돈을 낭비해야만 얻을 수 있는 신기루처럼 여겨질지 몰라도,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딛는 어린 여자에게는 무시와 조롱이 판을 치는 콤플렉스일 뿐이었다.


“그래? 고마워. 근데 남자만 머리 짧을 수 있는 건 아니야.”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만 말한다. 그런 아이의 세계가 다르게 보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머리카락 길이 하나로 성별을 판단할 수 없다고 일러 주었다. 실제로 고작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을 뿐인데 세상은 많이 바뀌었고, 계속 변화하고 있다.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머리카락을 고귀하고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예비 중학생에게 머리카락이란 억지로 잘림을 당해야 하는 체념이었다면, 예비 사회인에게는 자라면 자랄수록 제 발로 잘라야 하는 신념이 되었다. 그렇게 빛 좋은 개살구를 벗어나 굶주린 내면을 채우기 시작했다. 20대의 초가을이었다.


 가을이 지나고 늦겨울이 왔다. 봄을 앞둔 계절에 대학을 졸업하고, 동시에 취업에 성공했다. 전부 짧게 자른 머리 덕분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비약이 따르겠지만, 분명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머리를 말리고 치장하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면접 대본을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었고, 심호흡을 두 번, 세 번 더 하면서 자신감으로 부푼 배짱을 가질 수 있었다.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고 드러내니 면접관들의 눈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었으며, 동등한 관계에서 사람 대 사람으로 나를 보여 줄 수 있었다. 입사하고 나서 몇몇 사람들로부터 어리고 예쁠 때 머리를 기르는 게 어떻겠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말하는 어리고 예쁜 것은 다른 무엇으로 채울 수 있는 내면을 뜻하지 않았다. 단지 옛 관행처럼 여자로서 살기를 바랄 뿐이었다.



 뱀 껍질이 켜켜이 쌓여 굳은 것처럼 울퉁불퉁한 사진 앨범을 펼친다. 머리를 묶어 한껏 올리고, 앨범 표지와 같은 진한 갈색의 립스틱을 바른 채 하얀 이를 드러내는 여자가 있다. 처음 보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내 기억에 긴 머리의 엄마는 없다. 나와 같은 20대 초가을의 엄마는 연년생 남매 둘을 낳고 긴 곱슬머리를 싹둑 잘랐다.

 여자로서 사는 것과 여자로 사는 것은 다르다. 여자로서 사는 것은 외면이 부여한 자격으로 사는 것이고, 여자로 사는 것은 내면이 부여한 인격으로 사는 것이다. 나는 여자로 살기 위해 머리를 잘랐지만, 엄마는 엄마로서 살기 위해 머리를 잘랐다.

 엄마는 최근 25년 동안 몸담은 회사가 재정난으로 폐업하고 나서 백수 신세가 되었다. 인생의 절반을 마트 계산원으로 살아오면서 연차가 무색하게도 여전히 가장 낮은 임금을 받으며 하루 11시간을 꼬박 일했지만 돌아온 것은 권고사직이었다. 걱정하는 엄마에게 퇴근 후 같이 걷는 산책길에서 넌지시 다른 일을 찾아보자고 제안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할 줄 아는 것이 물건 바코드 찍는 것밖에 없다는 한숨 섞인 자조뿐이었다. 세상에는 많은 기회가 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공평하게 제공받지 못한다는 것을 수도 없이 겪어 온 애달픈 경험에서 나온 말이었다. 여전히 눈썹과 두 귀가 훤히 보일 정도로 짧은 머리를 한 엄마의 손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묶지 못하는 짧은 머리는 가느다란 국수를 뽑듯이 금방 자라 두 귀를 덮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선머슴처럼 덥수룩하고 지저분해 보이기 일쑤라 한 달에 한 번꼴로 다시 머리를 정돈해야 한다. 엄마는 커트 비용이 만 원을 돌파하자 미용실에 가는 돈이 아깝다며 스스로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고, 덩달아 아까워진 나는 엄마에게 머리를 맡기는 무모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모든 도전에는 무모함과 실패가 잇따른다. 아마추어 미용사가 머리를 자르면 머리카락이 중간중간 끊기거나 쥐가 파먹은 듯이 엉뚱한 부분에 휑하니 구멍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루 종일 우울해하거나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 머리가 잘못 잘렸다고 해서 인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머리를 자르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자 적당히 양지바른 마음에 다른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머리를 잘라야 할 시기가 올 때마다 엄마를 찾는다. 미용 영상을 보면서 이번에는 이렇게 잘라 보는 것이 어떨지 서로 의논한다. 그러면 엄마는 미용사 전용 가위를 구입하는 열정으로 나를 웃음 짓게 하고, 나날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가는 머리를 다정하게 쓸어 준다.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다며 새로운 시도를 기약한다. 머리는 다시 자랄 것이고, 그럼 나는 다시 자를 것이다. 이제는 여자로 살기를 택한 엄마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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