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

by nEvergreen

“죄송했어요, 사과드리고 싶어서 연락했어요”

“…”

“화 많이 나셨죠?”

“…”

“정말 죄송해요, 그럴 마음은 없었는데…그동안 고마왔어요. 더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게…”

말을 끝맺지 못했다. 민호가 말을 끝맺지 못하게 하였다.

“왜 이제야 연락하는 거죠, 얼마나 기다렸는데.”

마침내 전화기 너머로 무거운 민호의 말이 들려왔다.


민호가 건네 준 꽃다발을 묶은 리본 끝에 옛스런 글자가 적혀 있었다.

얼핏 봤다간 그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놓쳤으리라. 거꾸로 읽으니 진달래꽃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이게 왠 거예요?”

“오다가 샀어요” 쑥스러움을 감추며 민호가 말했다.

진달래 철 아닌데도 꽃잎이며 가지가 생생하고 색깔도 진하고 선명하여 방금 들에서 꺾어 온 듯했다.

“아니, 웬 진달래 꽃? 지금 철도 아닌데?”

“이거 비싸게 주고 샀어요.”

“생화예요? 그럴 리가…” 송이는 의심은 적중했다.

꽃 잎과 가지 표면에도 일정한 수분이 유지되며 최대한 진짜 꽃잎과 같은 재질을 사용한 조화였다.

“근데 왜 진달래꽃이죠?”

“먼 훗날 당신이 찾으면 그때 내 말이 잊었노라”

“… 작별인사인가요?”

“오늘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내 말이 잊었노라”

“단단히 삐졌군!”

“변함이 없는 것들은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바뀌어도 감동과 진리를 담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하하, 선전포고 감사해요. 꼭 그렇게 하세요. 대신 나중에 진짜 꽃으로 사다 주세요. 비록 곧 시들겠지만, 그 진실의 향기만큼은 영원한…”

민호가 흠칫 놀랬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를 눈치채고는.

“아, 그럴게요. 저는 다만…”

“부탁이 있어요. 혹여 내가 무슨 일에서 건 민호씨를 떠났을 때에라도 저를 포기하지 말고 꼭 저를 찾아주세요.”

뭔가 대단한 상실의 아픔들이 있었던 것일까.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어떤 막강한 힘에 떠밀려 가는 데 손을 내 뻗는 간절한 아픔의 소망이 담겨있지 않은가.

“꼭 찾아갈게요. 반드시 찾을 거예요!”


잠깐동안 애정 어린 대화들이 오가고 민호가 정말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런데 왜 다시 저한테 연락하신 거죠? 그 가짜 우상 때문인가요?”

“사건이 좀 있었어요. 부끄러워 지금은 다 말 못 하겠어요. 다만 민호씨를 다시 찾은 이유는 지금 얘기할게요”

송이는 비밀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일급비밀 서류들을 세상에서 가장 신뢰할만한 사람에게 꺼내 보이고 있었다.

“무서웠던 것 같아요. 다시 잃어버리는 아픔을 받고 싶지 않은… 나를 사랑하고 좋아했던 모든 존재들은 쉽게 내 곁을 떠났어요. 차라리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내 곁에 영원히 머무는 것 같았어요.

상실의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감정의 심연까지 들여다보이는 민호씨의 진실함과 진정함은 갑작스레 깨달은 진리를 보는 듯했고, 한편으로는 이제야 발견한 너무나 소중한 보물을 다시 잃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때문에 깊은 관계는 아니지만, 그저 가까운 존재만으로도 고맙게 지키고 싶었어요.

생명은 때론 무섭고 삶은 가볍지가 않아요. 다시 잃을 수도 있지만 단순히, 잃는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거나 다른 잘못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소망을 품고 사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삶의 아픈 경험에서 오는 무의식적인 포기에 휩싸인 채, 진정한 삶과 생명을 방치하는 것은 자신에게는 쉽고 편한 것일지 모르지만, 분명 그 때문에 아픔을 겪는 다른 이들이 있다는 것도요. 그래서 최대한 그들의 삶 곁에서 함께 해 주어야 한다는 것. 내가 받은 상실의 아픔을 다른 사람한테 다시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완벽한 인간이 없든 완벽한 사랑도 없지만, 인간에게는 소망이라는 것이 주어졌고 그것으로 그 부족함을 채워 나가야 함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제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어요”

별안간 민호는 송이를 꼭 껴안았다.

“내가 꼭, 반드시 곁에 있어 줄게요. 끝까지! 혹 송이씨가 아주 멀리 있게 될 때라도 꼭 찾아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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